채동욱 검찰총장이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감찰 지시가 내려진 직후 사퇴하면서 일선 검사들이 집단적인 의사 표시에 나서고 있다. 서울서부지검의 평검사들은 13일 회의를 열고 “법무부 장관의 공개 감찰 지시로 검찰의 정치 중립성이 훼손되는 상황이 우려스럽다”는 견해를 밝혔다. 다른 지검 평검사들의 의견 표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정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사표 수리가 되지 않았다. 진상 규명이 우선”이라고 말해 법무부의 감찰이 사퇴 압박용이 아니라 검찰총장의 윤리 문제임을 강조했다. 이번 사건은 ‘검찰총장의 혼외(婚外) 아들 문제’와 ‘검찰의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에 불만을 가진 쪽의 검찰총장 흔들기 의혹’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갖고 있다. 검찰총장의 윤리성도 중요하지만 중립성 훼손이 있다면 역시 중대한 사안이다. 두 측면 모두에 대해 진실 규명을 해야 한다.
채 총장에게 혼외 아들이 있는지 여부는 이번 논란의 시작이었을 뿐 아니라 여전히 사건의 핵심 쟁점으로 꼽히고 있다. 만약 혼외 아들의 존재가 사실이라면 알려진 경위가 어떻든 중대한 결격 사유로서 채 총장이 계속 자리에 앉아 있기는 어렵다. 채 총장에 대한 검증이나 인사청문회 때 이 사실이 알려졌더라면 검찰총장에 임명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동안 위장 전입이나 부동산 취득 과정의 문제 등으로 수많은 고위 공직 후보자들이 낙마했다.
채 총장은 진실 규명을 위해 정정 보도를 청구할 방침을 밝혔으며 유전자(DNA) 검사도 조속히 실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엄마 임모 씨의 협조가 전제되어야 하고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때까지 검찰총장으로서 영(令)이 서지 않고 직무 수행도 힘들 것이므로 상급 부처가 나서는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는 주장에도 설득력이 있다.
법무부의 감찰 발표가 채 총장에게 “그만두고 나가라”는 신호를 보낸 것도 사실이다. 법무부는 이번 감찰에 대해 청와대와 무관한 독자적 결정이라고 강조했으나 이 말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혼외 아들로 지목된 초등학생의 가족관계등록부, 학적부, 출국 기록 등 개인정보가 유출된 경위도 밝혀내야 한다. 우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열어 이 논란을 따지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검사들의 집단 의사 표시는 혼외 아들에 대한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는 성급하다고 본다. 혼외 아들에 대한 확인은 엄마 임 씨의 동의 없이는 어렵지만 채 총장의 향후 대응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는 있을 것이다. 채 총장이 정정 보도 청구와 함께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고 DNA 검사에 적극적으로 임한다면 결과를 지켜보아야 한다. 그러나 채 총장이 혼외 아들 논란으로 심각한 명예 훼손을 당했고 검찰총장직에서 사실상 밀려났음에도 소송과 DNA 검사에 소극적이라면 우리는 달리 생각할 도리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