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과 연출은 공연시간 80분 내내 팽팽하게 당긴 고무줄처럼 긴장을 놓지 않았다. 무대 위 어느 한구석에도 소홀함의 기척이 없었다.
6·25전쟁 때 벌어진 양민학살 사건 녹취록을 재구성한 연극 ‘말들의 무덤’. 열흘간의 공연을 마무리하는 15일 오후 무대에는 완벽한 마침표를 찍겠다는 치열함의 열기가 선연했다.
이 작품에는 대본이 없다. 관련 인터넷 사이트와 서적, 해외 언론,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수집해 목격자 녹취록을 만들었다. 배우들은 증언에 참여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자신의 몸에 담아 무대 위로 대신 뿌려냈다.
어린 시절 학교 운동장에 쭈그리고 앉아 줄줄이 총과 죽창으로 살해당하는 사람들을 지켜봐야 했던 기억. “너는 살아야 한다”며 온몸을 감싸 덮었던 어머니의 시신이 눌려오던 무게. 설맞은 상처가 괴로우니 확인 사살해 달라 애원하던 희생자의 목소리가 참혹한 현장 자료영상 위로 아프게 얹어진다.
“산 자들의 말과 죽은 자들의 몸을 극장이라는 공간 속에 불러오고자 했다”는 제작진의 설명에는 과장이 없다. 헝겊으로 얼굴을 가린 채 죽은 자가 하지 못한 말을 몸속 깊은 곳으로부터 끌어다 내뱉는 배우들의 얼굴에는 순간순간 신기(神氣)마저 스친다.
하지만 관객은 무대 위 긴장감을 오롯이 받아내 소통했을까. 60분쯤 지날 무렵 뭔가 공허한 기분이 들었다. 얕고 가벼운 심지를 반성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모로 꺾인 고개가 5명쯤 시야에 들어왔다. 무대는 절절한데 객석은 허전했다.
껴안아 짊어진 말들의 무게에 몰두하느라 관객의 시선을 깜박 잊은 것은 아닐까. 제작진 역시 “죽음의 기억을 관객과 어떻게 나눠야 할지” 고민했다. “재현이 아닌 재연을 통해 또 다른 진실과 기억을 나누려 했다”는 설명에는 찬성도 반대도 하고 싶지 않다.
다만, 10분만 짧게 할 수 없었을까. 관객이 지치는 것은 말의 무게가 아니라 건조한 형식때문인 듯했다. 소통을 원한다면 모든 것을 소통할 생각은 버리는 편이 좋다. 어깨 힘 살짝 뺀 재공연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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