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제비 진혁이 ‘희망의 하이킥’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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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착 9개월 된 김신혁군 성장기

탈북한 지 9개월이 지난 14일 채널A 추석 특집 토크쇼 ‘재회’ 녹화장에서 김신혁 군(오른쪽)이 진행자인 이영돈 PD에게 발차기를 선보였다. 신혁 군은 몇 달 전부터 태권도를 배워 파란 띠를 땄다고 했다.
탈북한 지 9개월이 지난 14일 채널A 추석 특집 토크쇼 ‘재회’ 녹화장에서 김신혁 군(오른쪽)이 진행자인 이영돈 PD에게 발차기를 선보였다. 신혁 군은 몇 달 전부터 태권도를 배워 파란 띠를 땄다고 했다.
100cm가 채 되지 않았던 키가 120cm를 넘어섰다. 얼굴의 부기가 많이 빠지고 턱 선이 날렵해졌다. 커다란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깔깔거리며 웃을 때마다 양 볼에 보조개가 깊이 파였다. 방송 녹화 전 스튜디오 구석구석을 뛰어다니는 아이의 모습에서는 먹을거리를 찾아 북한의 장터거리를 헤매던 꽃제비의 흔적은 찾기 어려웠다. 탈북 후 9개월 사이의 변화다.

올해 초 방영된 채널A 2부작 다큐멘터리 ‘특별취재 탈북’. 북한 양강도 혜산에서 중국을 거쳐 동남아시아 제3국까지 이어지는 15명의 탈북기를 그린 이 다큐멘터리는 국내는 물론이고 일본 니혼TV에서도 방영돼 시청률 11.8%를 기록하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다큐멘터리 속 일곱 살 꽃제비 진혁이는 많은 관심을 받았다. 당시 아버지는 자살했고 어머니는 중국으로 떠나 돌봐줄 이 없던 아이는 구걸을 하며 목숨을 이어왔다. 나이가 어린 터라 다른 꽃제비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외톨이로 지냈다. 영하 25도의 혹한을 어떻게 견디느냐는 질문에 “그냥 운다”고 답하면서도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았던 아이는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방송 후 아이를 후원하고 싶다는 요청이 줄을 이었다.

북한 양강도 혜산의 일곱 살 ‘꽃제비’ 시절 김신혁 군. 올해 1월 채널A 신년 다큐멘터리 2부작 ‘특별취재 탈북’에서 가명인 ‘진혁’이로 소개됐던 아이는 남루한 차림새로 “한국에 가면 고기와 오이가 먹고 싶다”고 말해 시청자들을 울렸다. 채널A 제공
북한 양강도 혜산의 일곱 살 ‘꽃제비’ 시절 김신혁 군. 올해 1월 채널A 신년 다큐멘터리 2부작 ‘특별취재 탈북’에서 가명인 ‘진혁’이로 소개됐던 아이는 남루한 차림새로 “한국에 가면 고기와 오이가 먹고 싶다”고 말해 시청자들을 울렸다. 채널A 제공
채널A는 20일 추석 특집으로 꽃제비 소년 진혁이를 비롯한 탈북자 4명을 초대해 탈북 후 이야기를 듣는 토크쇼 ‘재회’를 방송한다. 14일 서울 광화문 채널A 오픈 스튜디오에서 이영돈 PD의 사회로 ‘재회’ 녹화가 진행됐다. 아이가 한국에 와서 방송 출연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큐멘터리에선 가명인 진혁이로 나갔지만 진짜 이름은 김신혁이다.

“신혁 군 나와 주세요!”

녹화 시작. 이영돈 PD의 부름에 신혁이가 쭈뼛쭈뼛 등장했다. 뜨거운 조명과 밖에서 스튜디오 안을 들여다보는 인파가 영 어색한 듯했다. 평소 신혁이가 삼촌이라고 부르는 양승원 PD가 뒤이어 스튜디오에 나타나자 그제야 표정이 밝아졌다. 양 PD는 ‘특별취재 탈북’의 연출자. 신혁이와는 생사고락을 함께한 사이다.

신혁이가 이날 방송에 출연하게 된 것도 양 PD와의 인연 때문이다. 신혁이가 살고 있는 탈북청소년생활공동체 ‘우리집’의 마석훈 대표는 “신혁이는 삼촌(양 PD)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신나서 어쩔 줄 몰라 한다”고 전했다.

올해 1월 입국한 신혁이는 하나원 생활을 마치고 4월부터 경기 안산에 있는 ‘우리집’에서 13명의 형, 누나들과 살고 있다. 다큐멘터리에서 “오이와 고기를 먹고 싶다”고 말했던 아이는 ‘우리집’ 생활을 하며 한두 달간 오이를 상자째 먹었다고 한다. 한동안 섭식 장애로 고기류를 전혀 먹지 못했지만 이제는 또래 아이들처럼 소시지나 햄도 좋아한다. 북한에서 구걸을 하다 얻은 상처는 대부분 치료됐지만 여전히 몸을 웅크리고 잔다. 평소엔 쾌활하게 지내지만 북한 시절을 묻는 질문에는 “기억이 안 난다”고 말한다. 결핵은 완전히 낫지 않아 약을 먹으며 치료를 받고 있다.

▼ 北 인민가요 부르던 아이, ‘곰 세마리’ 동요실력 뽐내 ▼

“딱지치기는 동네서 1등”


5월부터는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책상에 앉아 있지 못하고 교실 밖으로 도망 다니던 아이는 이제 글을 곧잘 읽는다. 신혁이는 “발표를 해서 선생님에게 칭찬 스티커를 많이 받았다”고 자랑했다. 동네에서 딱지치기는 1등이지만 아직 공부는 별로라는 얘기도 들려줬다. 특히 수학이 싫다고.

이날 녹화에서 신혁이는 발차기 실력을 뽐냈다. 몇 달 전부터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해 파란 띠를 땄단다. 다큐멘터리에서 북한 인민가요를 불렀던 아이는 이날 한국에서 배운 동요 ‘곰 세 마리’를 불렀다. 채널A ‘먹거리 X파일’을 봤다며 이영돈 PD를 따라 수줍게 “제가 한 번 먹어보겠습니다”를 흉내 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한국에 와서 한동안 유아용 애니메이션인 ‘뽀로로’에 빠져 있던 신혁이는 이제 할리우드 영화 ‘아이언맨’의 팬이 됐다. 한때 경찰이 꿈이었다가 장래 희망도 ‘로봇을 만드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신혁이는 “아이언맨처럼 하늘을 날아서 여기저기를 다니고 싶다”고 했다. 마석훈 대표는 “신혁이가 보통의 남한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빠르게 거치고 있다”고 말했다.

채널A는 추석 특집 ‘재회’ 외에도 신혁이의 성장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올해 말에 방영할 예정이다. 신혁 군 후원 ARS(탈북청소년생활공동체 ‘우리집’) 1666-6534

※김신혁 군이 출연하는 채널A 추석 특집 토크쇼 ‘재회’는 20일 오후 8시 30분에 방영됩니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꽃제비#김신혁#특별취재 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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