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서울을 휘감고 있는 ‘한양도성’을 걷다 보면 600년 수도 서울의 품격이 느껴진다. 때론 숲길로 숨고 공원길로 드러나기도 하는 성벽은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고전미를 지녔다. 자세히 보면 어떤 성돌은 둥글둥글, 어떤 건 네모반듯하다. 울퉁불퉁한 것도, 반질반질한 것도 있다. 한번에 다 쌓은 게 아니다. 누가, 언제 도성을 쌓았을까.
한양도성의 길이는 1만8627km. 70%인 1만2771km 구간이 원형을 간직하고 있고 사적 10호로 지정됐다. 도성을 처음 쌓은 것은 조선 태조 때. 1396년(태조 5년) 1월 9일∼2월 28일 백성 11만8070명을 불러들였다. 성터가 높고 험한 곳은 석성을, 평탄한 곳은 토성을 쌓았다.
성 둘레 5만9500척(尺)을 600척씩 97개 공구로 나누고 천자문 순서대로 일련번호를 매겨 책임을 맡겼다. 백악산을 기준으로 첫 글자인 천(天)자로 시작해 시계방향으로 돌아 97번째 글자 조(弔)자로 끝난다. 천(天)자부터 일(日)자까지(1∼9공구)는 동북면(평안도 황해도), 10∼17공구는 강원도, 18∼58공구는 경상도, 59∼73공구는 전라도, 74∼97공구는 서북면(함경도)이 맡았다.
보수공사도 진행됐다. 1421년(세종 3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 23일까지 전국에서 백성 32만2400명과 기술자 2211명, 수령과 인솔자 115명을 불러들려 전 구간을 석성으로 고쳐 쌓았다.
공사는 철저하게 구간별 책임제로 진행됐다. 각 구간을 어느 지역에서 쌓았는지는 ‘각자성석’(성곽 돌에 축성 관련 글을 새겨 넣은 것)에 고스란히 남겨놓았다. 지금도 낙산 성곽길을 걷다 보면 음성, 황간, 영동 등 충청도 지명이, 낙산 정상에서 흥인지문(동대문) 사이에는 무안, 김제, 정읍 등 전라도 지명이 보인다.
임진왜란, 병자호란으로 파괴된 도성은 숙종 때 대대적으로 보수했다. 이번에는 백성 대신 도성을 지키는 5군영 군인들을 동원했다. 보수공사에 참여한 감독과 기술자의 실명은 성벽에 기록했다. 흥인지문 옆 동대문교회 바깥쪽 도성 벽에는 강희 45년(1706년) 4월에 개축했다는 설명과 함께 훈련도감 군관, 기술자인 석수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서울 성곽길을 돌면서 이 구간은 어느 시대, 어느 지역 사람들이 쌓은 것인지 추측하는 것도 즐거움이다. 태조 때 축조된 성곽은 규격이 일정하지 않고 다양한 크기의 깬 돌을 사용했다. 세종 때는 아래쪽은 크고 위로 올라가면서 돌이 작아진다.
낙산 성곽길은 경사가 심하지 않아 비교적 쉽게 돌아볼 수 있다. 낙산 정상에는 낙산공원이 있고 동대문 역사문화공원, 대학로, 벽화로 유명한 이화마을 등도 가볼 수 있다. 혜화문 방향에서는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동대문 방향은 1·4호선 동대문역, 대학로 방향에선 4호선 혜화역에서 출발하면 된다.
성곽길을 돌아보면서 성곽에 얽힌 이야기를 창작극으로 감상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 서울시는 ‘스토리텔링을 통한 관광명소화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창작 야외 현장극 ‘이야기주머니―호랑이 바위로 쌓아올린 한양도성’을 최근 선보였다. 우리 고유 설화에 나오는 인왕산 호랑이와 범바위, 조선 초기 축성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11월 9일까지 매주 토요일 낙산공원 놀이광장에서 진행되며 무료다. 문의는 시 관광정책과(02-2133-2816)나 한양도성 스토리텔링사업 운영팀(02-3673-4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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