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다 내면 바보’ 생각하는 한 복지 재원 마련 어렵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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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기고/강병구]<중>조세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바람직한 세원 확보를 위한 제언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탈세(脫稅)는 범죄 행위일 뿐만 아니라 납세 윤리를 약화시켜 세수 기반을 침식한다. 국세청은 2012년에 4592명의 부가가치세 납부 대상자, 0.1%의 개인사업자와 1%의 법인사업자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하여 5조7000억 원의 세금을 추징하였다. 특히 수입 금액이 5000억 원을 초과하는 법인사업자에 대한 추징 세액은 무려 1조1417억 원에 달하였다.

세무조사 대상 개인사업자와 법인사업자의 소득 탈루율은 각각 36.9%와 9.5%를 기록했다. 사업 규모가 작을수록 소득 탈루율은 증가했다.

물론 세무조사 대상에는 탈세 혐의 기업이 포함되기 때문에 전체 기업의 소득 탈루율은 이보다 낮겠지만,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가 상당히 큰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탈세 규모 또한 작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 사회에서 탈세는 다양한 방식으로 행해진다. 소비자와 판매자는 현금 거래를 통해 부가가치세와 소득세를 탈세하고, 부동산 거래자는 다운계약서를 작성하여 양도소득세와 취득세를 탈세한다. 기업들은 비용을 부풀리거나 연구전담부서에 소속되지 않은 직원의 인건비도 연구 및 인력개발비에 포함시켜 세액공제를 받기도 한다. 현행 금융실명제법에서는 명의신탁자와 수탁자를 처벌하지 않기 때문에 차명계좌는 여전히 탈세의 주된 수단으로 활용된다.

특히 변칙적인 상속 및 증여는 세대 간 부의 불평등을 증가시키고 계층 간 이동성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2003년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완전포괄주의를 도입하였지만 그 실효성은 여전히 미약하다. 2009년 에버랜드 전환사채의 헐값 발행 사건을 비롯하여 최근에는 일감 몰아주기가 재벌총수 일가의 후손들에게 부를 이전하는 방편으로 이용되고 있다. 경제개혁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말 현재 29개 기업집단 지배주주 가족이 회사 기회 유용과 지원성 거래를 통해 얻은 부의 증식 규모는 무려 9조9588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개인 또는 기업들은 해외에서 발생한 소득을 해외 비밀계좌에 은닉하는 방식으로 소득세 및 증여세를 탈세하기도 한다. 조세정의네트워크는 1970년대부터 2010년 말까지 한국의 부자들이 888조 원에 달하는 거액을 조세회피처에 숨겨 두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CJ그룹 사례에서 보듯이 조세회피처를 통해 조성된 비자금이 자사주 매입에 투입되어 기업지배구조를 더욱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탈세 행위는 공평과세의 원칙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세수 결손을 초래해 국가의 재정건전성을 위협한다. 더욱이 탈세 행위는 증세에 대한 성실 납세자의 불만을 증폭시켜 합리적인 증세 논의를 어렵게 한다.

그렇다면 탈세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금융거래정보에 대한 국세청의 접근성 확대와 세무조사의 강화를 통해 탈세 행위의 적발 확률을 높여야 한다. 기업이 정상적으로 회계 처리를 하고 합당한 세금을 납부한다면 세무조사가 기업의 경영활동을 저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동시에 탈세 행위에 대한 처벌을 공정하고도 엄격하게 집행해야 한다.

그동안 거액의 세금을 탈세해도 추징세액만 부과될 뿐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경우가 많아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였다. 또한 탈세 혐의 사업자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를 공표하여 그 과정이 공정하고 정당했음을 납세자들에게 알려야 한다. 이러한 조치는 탈세 행위의 예방뿐만 아니라 세무행정의 투명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공직에 대한 성실납세 기준의 엄격한 적용과 공평과세의 실현도 납세 윤리의 향상을 통해 탈세 방지에 기여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 조세정의를 바로 세우고 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납세의식이 중요하다. 탈세 행위의 근절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러나 탈세 행위를 방지하는 것만으로는 복지국가 건설에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공평과세를 강화하는 보다 적극적인 증세 전략이 필요하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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