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전 세계에서 번역 책 출판 부수가 가장 많은 나라입니다. 다른 유럽 국가 출판업자들은 한국어처럼 사용 인구가 많지 않은 ‘주변언어’로 지은 책을 자국어로 번역할지 결정하기에 앞서 프랑스어 번역본을 먼저 읽지요. 프랑스 출판계가 유럽시장의 관문인 이유입니다.”
프랑스 파리의 독립출판사 세르주사프랑의 대표 세르주 사프랑 씨(63)는 프랑스 출판계에서 한국문학 전도사로 불린다. 출판사 쥘마의 공동대표 겸 문학담당 편집장 시절인 1995년 황순원의 ‘목넘이 마을의 개’를 번역해 출판한 것을 시작으로 황석영 은희경 천우영 이승우 등 한국 작가의 작품을 수십 권이나 프랑스에 소개했다. 다음 달 3일 이승우의 단편집 ‘오래된 일기’ 발간을 앞둔 그를 e메일 인터뷰했다.
“한국에 대해 잘 모르다가 쥘마에서 18, 19세기 여행 작가 총서를 펴내면서 조르주 뒤크로가 쓴 19세기 조선 여행기 ‘가련하고 정다운 나라, 조선’을 접하게 됐죠. 이 책을 펴낼 당시 한국에 있던 제 친구 장 노엘 주테(번역가)가 서문을 썼는데, 이 친구 덕분에 한국과 한국문학에 관심을 갖게 됐죠.”
이후 한국 문학의 가능성을 본 그는 쥘마 출판사에서 2002∼2010년 ‘한씨연대기’ ‘삼포 가는 길’ ‘객지’ ‘손님’ ‘무기의 그늘’ ‘오래된 정원’ 등 황석영의 소설 7편을 잇따라 출간했다. ‘심청’ 같은 작품은 프랑스에서 7000부 넘게 판매됐다.
“‘한씨연대기’나 ‘삼포 가는 길’ 같은 초기작에 대한 프랑스 평단의 반응은 매우 호의적이었습니다. 황석영의 1970년대 작품은 소설의 주제나 소설이 다루는 사회적, 인간적 의미가 프랑스의 대문호 에밀 졸라의 그것과 종종 비견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초기작의 사실주의적이고 간결한 문체에서 서정적, 주술적 문체로의 변화가 느껴지는 ‘손님’이 가장 심오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출간을 결정한 한국문학 목록에 현역 작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김유정 이상 같은 20세기 초반에 활동한 문인의 작품은 물론이고 ‘변강쇠전’이나 ‘열녀춘향수절가’ 같은 고전문학 작품도 출간됐다.
그는 지난해 쥘마에서 퇴직하고 나와 자신의 이름을 딴 독립출판사를 세웠다. 이후 한국문학 작품 출간에 속도가 붙었다. 올 5월 천운영의 장편소설 ‘잘가라! 써커스’를 펴냈고, 오정희의 소설도 곧 출간한다.
“한국 여성 작가들의 목소리를 우선적으로 알리고 싶습니다. 천운영의 소설이 매력적인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승우나 천운영의 작품은 인간의 조건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룬다는 공통점도 있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 작품이 유럽에 더 널리 소개되기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지난 5, 6년간 프랑스 소설 시장에서 외국문학, 특히 아시아문학의 성장세가 눈부십니다. 한국 작가가 자주 현지 서적상과 미디어, 작가들과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 문인단체와 대학에서 프랑스 측 파트너와 한국문학 관련 심포지엄을 더 많이 공동 주최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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