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촬영 땐 낙마사고…코뼈 조각나고 미간 찢어져 아픔보다는 역할 뺏길까봐 수술 강행…촬영 이어가
말년운 좋다는 내 관상운, 영화 ‘관상’ 만나 터졌죠 항상 신인 마음…영화도 연극도 멈추지 않고 달릴겁니다
20년 동안 연기를 해왔고 이젠 40대가 된 배우도 때론 눈시울을 붉힌다.
영화 ‘관상’ 첫 촬영에 나섰던 1년 전 이맘때를 떠올리며 배우 이윤건(43)은 두 눈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웃자고” 꺼낸 촬영 에피소드는, 하지만 그 누구도 웃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전라남도 장성의 산 속에서 이뤄진 당시의 촬영은 이윤건을 포함해 8명의 연기자가 말을 타고 질주하는 장면이었다. 하필 이윤건이 탄 말은 은퇴한 지 얼마 안 된 경주마였다. 말의 질주 본능으로 결국 이윤건은 낙마사고를 당했다.
“코뼈가 세 조각이 나고 미간이 찢어졌다. 넘어진 말이 일어나면서 말발굽에 얼굴까지 치였다.”
얼굴이 온통 피범벅이 됐는데도 이윤건이 먼저 느낀 건 ‘고통’이 아니었다. “출연을 못하게 되면 어쩌지”란 생각부터 스쳤다. 불안했다. 스태프가 몰려왔을 때 그는 “괜찮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코뼈 수술 일정을 자꾸 미루는 의사에게도 이윤건은 “빨리 하지 않으면 다른 배우가 내 역할을 차지할지 모른다”며 매달렸다.
그만큼 ‘관상’은 이윤건에게 각별한 작품이다. 800만 흥행은 나중 문제다. 촬영을 시작할 때부터 각오가 남달랐던 그는 오디션을 거쳐 극중 사헌부 관리 조상용 역을 따냈다. 모략과 술수의 인물들과는 전혀 다른 올곧은 성품으로 관객에게 신뢰를 준다.
실제로 관상을 볼 때면 이윤건이 늘 듣는 이야기가 있다. ‘하관이 좋아서 말년운이 좋다’는 덕담이다. 40대에 접어들어 만난 ‘관상’으로 그는 최고 흥행의 운과도 만났다. 얼마 전엔 “음지에서 나와 양지로 가고 싶다”는 마음에 본명(이찬영)을 바꾸기도 했다. 새로 얻은 이름은 ‘윤택하게 세운다’란 의미다.
요즘 들어 이처럼 새로운 의미와 출발점을 찾아가는 그가 무대에 처음 나선 건 1993년. 산울림소극장에서 공연한 연극 ‘죄와 벌’이 데뷔작이다. 그는 지금도 대학로 극단 쎄실 소속이다. 1998년 영화 ‘러브러브’를 계기로 영화에까지 데뷔한 이윤건은 ‘취화선’ ‘블루’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등을 거쳤다. 그 중 지금도 회자 되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속 명대사 ‘통하였느냐’가 바로 그의 입에서 나왔다.
하지만 아직 이윤건은 “신 스틸러로 불리는 명품 배우들이 부럽다”고 말한다. “출연한 영화 속 모습과 실제 나를 연결해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가끔은 내가 나를 증명해야 한다. ‘관상’에서 나온 모습 그대로, 요즘 수염을 기르고 다니는 것처럼 말이다. 하하!”
배우가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는 것. 외모만큼이나 개성 강한 연기력이 그 유일하고도 유력한 방법이라면 이윤건은 그런 면에서 스스로를 입증할 수 있는 능력을 꾸준히 갖춰가는 신인의 마음으로 산다.
“자연인의 나이로는 마흔 살이 넘었지만 배우 나이로 친다면 이제 스무 살이다. 뭐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나이 아닌가.”
이윤건은 ‘관상’의 흥행에 취해있을 생각은 없다. 지금도 여러 영화의 오디션에 참여하며 분주한 일상을 산다. “매년 적어도 한 편의 연극은 한다”는 원칙도 갖고 있다. 그가 속한 극단 쎄실은 순수 창작극만 무대에 올리기로 유명하다. 이윤건은 “영화도 연극도 멈추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