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수정되고, 이지원 시스템에서 일부 삭제된 뒤 대통령기록관에는 아예 이관조차 되지 않은 경위가 당시 청와대 결재문서와 회의 자료를 통해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8일 국회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남측은 앞으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며 공동어로 활동을 하면 NLL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며 구두 약속을 해줬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소속인 서상기 정보위원장도 올해 6월 20일 회의록 발췌본을 열람한 뒤 “노 전 대통령이 ‘내가 봐도 NLL은 숨통이 막힌다. NLL을 변경하는 데 있어 위원장과 내가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NLL 폐기 발언을 했다는 주장이었다. 서 위원장은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제가 보고드린 것과 같이…’라는 비굴한 표현을 썼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문재인 의원은 “회의록을 열람해 NLL 포기 발언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국가정보원이 6월 24일 공개한 회의록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NLL이 국제법적인 근거도 없고 논리적 근거도 분명치 않은 것인데…북측 인민으로서도 자존심이 걸린 것이고. 남측에서는 이걸 영토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야당은 이를 토대로 “NLL 포기 발언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회의록에는 ‘보고드린다’는 표현도 없었다.
하지만 정상회담 이후 청와대 비서관회의에서 나온 노 전 대통령의 지시로 NLL 관련 부분이 수정된 것으로 파악되면서 실제 NLL 포기 발언이 있었는지를 놓고 논란이 재점화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이지원에서 복원한 초본을 공개할 경우 발언의 진위가 확인될 수 있지만 공개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이와 함께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었던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회의록 폐기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도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 의원은 “이지원에 있는 회의록이 지정기록물로 분류돼 국가기록원에 이관됐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폐기 지시 이후 청와대가 2008년 1월 이지원에 삭제 프로그램을 설치해 회의록을 삭제한 만큼 기록물 이관 작업을 총괄한 문 의원이 그 사실을 몰랐다는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 의원은 2011년 6월 발간한 자서전 ‘운명’에서 “방대한 기록물을 정리해 넘기는 작업을 (내가) 직접 독려하며 마무리했다”고 적었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이 조명균 전 안보정책비서관에게 회의록은 국정원에만 남기도록 지시함으로써 실무자를 통해 이지원 기록이 삭제 또는 누락되는 과정을 문 의원이 보고받지 못했다면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못했을 수 있다. 특히 청와대 회의에서 노 전 대통령의 폐기 지시에도 불구하고 “이지원에서는 삭제가 안 된다”는 이유로 지정기록물로 지정하기로 한 내용까지만 알고 있었다면 문 의원의 주장에도 일리가 생긴다.
하지만 회의록이 최종적으로 지정기록물로 분류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되지 않은 만큼 문서 이관 총괄 책임자였던 문 의원이 이 과정을 몰랐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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