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한 누리꾼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경찰의 ‘출석요구서’를 사진으로 찍어 올렸다. 요구서에는 “‘(가수) 백○○ ××× 맨날 담배나 벅뻑(뻑뻑) 펴대고…’라고 글을 올린 것에 대해서 조사하고자 출석요구서 발송합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누리꾼은 6월 같은 커뮤니티에 백 씨가 유산한 것을 조롱한 글을 올려 백 씨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출석요구서가 도착하자 그는 ‘백○○ 고소장 인증’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고소장 인증 사진은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용서할 필요가 없다”는 비난과 “진짜 인증하네(고소당했네)”라며 영웅시하는 듯한 표현이 뒤섞였다.
최근 인터넷에서 악성 게시글에 대한 고소사건이 급증하는 가운데 일부 누리꾼 사이에서 악성 게시글을 단 사람을 고소하거나 고소당하는 것을 자랑스레 ‘인증’하는 걸 일종의 ‘게임’처럼 즐기는 현상이 번지고 있다. 취재팀이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고소장 인증’을 검색하자 자신이 저지른 모욕사건에 대한 경찰 출석요구서나 실제 고소장을 작성하고 있는 장면 등을 찍은 사진이 줄줄이 올라왔다. 이들은 시중의 과자 이름을 빗대 고소당한 것을 ‘고소미 먹었다’고 표현하며 희화화했다.
올 2월 인터넷 방송 진행자 마재윤 씨는 누리꾼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뒤 직접 고소장을 찍어 올려 논란이 됐다. 최근 일반인 사이에서도 인터넷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는 누리꾼을 상대로 “고소장을 인증하면 인정해주겠다”며 ‘고소 인증’을 부추기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악성 게시글에 억울해하는 사람에게는 “진짜 억울하면 고소를 하고 고소장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라”고 요구한다.
전우영 충남대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최근 일반인이 경찰의 출석요구서를 찍어 올리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 ‘내가 별것도 아닌 걸로 이렇게 고소를 당했다’며 지지를 얻기 위한 의도”라고 분석했다.
‘고소 인증’에는 악성 게시글을 주로 올리는 누리꾼 집단에서 ‘투사’로 인정받고자 하는 심리도 반영되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을 고소한 유명인에 대해 비아냥대며 “힘 있는 사람이 나 같은 일개 시민을 고소했다”고 비난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5일 다른 웹사이트에는 “고소미 먹은 것 처분 결과 떴다!”는 글이 올라왔다. ‘스***’라는 누리꾼은 지난달 26일 서울서부지검에서 보낸 피의사건 처분 결과 통지서를 올리고 자신이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으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 과정을 무용담처럼 썼을 뿐만 아니라 “나 정도만 한 사람들은 무혐의니 너무 맘 졸이지 말라”는 식의 내용도 포함됐다.
경찰은 누리꾼 사이에서 고소 인증이 늘고 있는 데 대해 명예훼손 범죄 자체가 희화화되거나 무분별한 고소놀이에 경찰력이 낭비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법조 관계자는 “고소 사실을 조롱하는 글을 올릴 경우 혐의 내용에 대해 반성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