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웅산 테러 30주년]
당시 문공부 직원 김상영씨가 테러현장서 본 고 이중현 본보 기자
자리 바꿔 단상 앞으로 나갔다 변고… 취재열정이 생사 갈림길 될 줄이야
“마지막 순간까지 카메라를 놓지 않았던 진정한 사진기자였습니다.”
1983년 10월 9일 버마(현 미얀마) 아웅산 테러 당시 문화공보부 직원이었던 김상영 씨(71)는 사망자 17명 중 유일한 민간인이었던 고 이중현 동아일보 사진기자(당시 34세)에 대해 “성실하고 책임감이 유별났던 친구로 기억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 씨는 “당시 대통령 수행기자들 중 30대의 이 기자는 젊은 축에 속했다. 그러나 취재 열의만은 누구에게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이 기자의 그 열정이 생사의 갈림길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김 씨는 덧붙였다.
“김 선배, 이번에는 제가 좀 찍어야겠어요. 자리 좀 바꿔줘요.”
당시 단상 앞쪽에 있던 김 씨에게 이 기자는 자리를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김 씨가 뒤로 물러서고 이 기자가 앞으로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들렸다. 정신을 잠시 잃었던 김 씨가 주위를 둘러보자 행사장 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앞쪽에 있던 이 기자는 건물 잔해 사이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김 씨는 무의식적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그의 카메라에 이 기자의 마지막 모습도 담겼다. 김 씨가 다시 정신을 잃었고 깨어났을 때는 병원이었다. 거기서 이 기자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운명의 장난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한시도 그 친구를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 그는 곧바로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이 기자의 묘소를 참배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기자의 유족 소식을 수소문했지만 끝내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이 기자의 아이가 서너 살쯤이었으니까 이제 서른이 넘은 어른이 됐겠네요. 혹시 그를 만나게 되면 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한 분이었는지 꼭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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