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혼슈 서남부 야마구치 현 우베 시. 인구 17만여 명의 이 도시는 과거 주력이었던 석탄산업이 몰락하면서 도시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조각비엔날레 개최 등을 통해 문화도시로 탈바꿈하고, 5년 전부터는 각급 학교 급식에 지역 농산물을 공급하는 운동이 시작되면서 차츰 활력을 찾고 있다. 지난달 말 찾은 우베 시 외곽의 한 작은 마을. 이 마을 농민들은 우베 시, 지역 농협 등의 주선으로 우베 시내 학교에 쌀 감자 양파 등 다양한 식재료를 공급하고 있다. 나이토 데쓰오 씨(71)는 “우리 지역 아이들에게 안전한 식재료를 공급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일한다”며 “마을에 새로운 일자리도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는 지역 농협을 중심으로 지방자치단체, 생산자, 소비자가 함께 지역농산물(로컬푸드) 학교급식 운동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시도하고 있는 국내외 사례를 현지 취재해 2회에 걸쳐 게재한다.
○ ‘학교급식 식재 공급 응원단’ 발족
1980년부터 학교급식을 시작한 우베 시에서 지역에서 생산한 쌀을 학교급식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99년이다. 2010년에는 지역 내 모든 학교급식에 우베산 쌀을 사용하고 있다. 채소 과일 등은 2002년 처음 공급할 당시 전체 학교의 1.9% 남짓에서 올해 26.1%로 늘었다.
로컬푸드 학교급식 운동이 활성화된 데는 2008년 발족한 ‘학교급식 식재 공급 응원단(부회)’의 역할이 컸다. 지역 내 한 학교 급식센터 직원의 제안으로 시작돼 지금은 야마구치 현, 우베 시, 지역 농협, 유통업체, 학교 급식센터, 농가 등 18개 단체와 농가 대표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응원단은 각 농가의 품목별 생산물량, 품질관리는 물론이고 가격까지 결정한다. 우베 시 교육위원회 나카노 히데시 학교급식과장은 “학교급식 운동이 시작된 이후 지역 내 새로운 일자리도 생겨나면서 활력이 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 지역 농협 중심 역할
시와 학교, 생산농가, 유통업체 등의 중간 창구는 지역 농협이 맡고 있다. 이 지역 농협은 개별 농가의 작물 생산 계획 수립 단계에서부터 관여한다. 재배 과정은 물론이고 수확 후 운반, 보관, 선별작업까지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학교급식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주체들 간에 정보를 원활하게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도 한다. 이 과정에서 농협은 최대한 유통 단계를 축소해 학교에 저렴하게 식재료를 공급하는 한편 농가들이 지속적으로 해당 품목을 생산할 수 있도록 생산자도 수용할 수 있는 가격을 이끌어내는 역할도 하고 있다.
○ 정보 교류와 책임감
일본은 1981년 이후 지역에서 생산하는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을 추진했다. 우리로 치면 1990년대 이후 농협이 주도한 ‘신토불이(身土不二)’ 운동이다. 농가에는 안정적인 공급처를 마련해주고 지역 소비자에게는 저렴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자는 취지였다. 지역 생산자와 소비자 간 직거래 매장이 1만5000여 개에 이를 정도로 전국적인 운동으로 확산됐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도 지역 농산물의 학교급식 공급 운동이 성공하려면 생산농가와 학교급식 관계자, 지역 농협 간에 활발한 정보 교류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학교급식 담당자는 지역에서 시기별 작물 종류와 생산량 등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를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생산자는 학교급식 담당자가 요구하는 위생관리 규칙을 준수하고, 짧은 시간에 대량 조리가 가능하도록 1차적인 가공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베 농협 야마모토 고지 과장은 “농산물 수급이 기후에 많이 좌우되고 불량품 문제도 발생하기 때문에 급식센터와 생산자 간 원활한 정보 교류를 위해 농협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영국의 유명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는 2005년 자신이 진행하는 TV 요리 프로그램(제이미 스쿨 디너)에서 싸구려 냉동, 즉석 식재료를 공급하는 학교급식 현장을 고발했다. 영국 국민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는 그의 고발에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다. 영국 정부는 이듬해부터 3년에 걸쳐 4800여억 원을 학교급식 개선 사업에 투입하기로 하고, 학교급식에 지역 생산 농축산물 사용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최근 국내에서도 일부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학교급식에 지역 농산물 공급을 확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미국, 유럽 등지에선 1990년대 초반부터 이 같은 운동이 시작돼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미국의 지역 농산물 학교급식 연결 프로그램(FTS·Farm-to-School)은 1990년대 초반 패스트푸드에 의한 빈곤층 아이들의 비만 문제와 영세 농가의 어려움 등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됐다. 코네티컷, 플로리다, 노스캐롤라이나 등 일부 주에서 실시됐던 이 프로그램은 10여 년 만에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07년에 이미 미국 38개 주, 1만여 개 학교에서 이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 과정에서 연방정부는 ‘농장법’을 제정해 학교의 지역 농산물 구매를 명시했고, 매년 40만 달러를 배정해 지역 생산 농산물 가공에 필요한 기자재와 저장시설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또 점심 급식을 하는 학교가 구입하는 농산물에 대해 5년마다 조사를 해서 의회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2000년 일부 지자체를 중심으로 지역 생산 유기농 식재료를 학교급식에 사용할 것을 의무화하는 조례 제정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6년여 만에 500개가 넘는 지자체에서 학교급식에 지역 생산 유기농 식재료를 사용한 급식을 하게 됐고, 급식 대상 학생 4분의 1이 혜택을 받게 됐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학교급식에 지역 농산물 공급이 확대되면 아이들 건강에 도움이 되고 지역 농가도 안정적인 공급처를 확보할 수 있어 양측이 모두 수혜자가 된다”며 “지역 내에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 지역 경제에도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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