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이제 분야별로 검토할 후보는 다 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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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기관장 인선 조만간 마무리

‘느림보’ 소리를 듣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人事)가 속도를 낼지 주목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동남아 다자외교와 인도네시아 국빈방문을 마치고 13일 오전 귀국한 박 대통령에게 감사원장 등 정부 주요 공직의 빈자리를 채우고, 공공기관의 인사 병목현상을 해소해야 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주요 공직과 공공기관장 인선이 계속 늦춰지는 원인으로 취임 전후 인사 파동에 따른 박 대통령의 ‘인사 트라우마’를 꼽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은 6월 각종 공공기관장에 기획재정부나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료 낙하산 현상이 심해지자 모든 인선을 중단하고 전문성 있는 인사들을 추가해 철저히 검증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이후 비서실장 주재 인사위원회가 추천하는 후보군을 3배수에서 6배수로 넓히고 관련 장관도 추천에 참여하도록 인사 시스템이 바뀌었다. 전과, 납세, 병역, 논문 표절 및 위장전입 여부 등 기초적인 검증뿐만 아니라 평판 조사까지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이제 분야별로 검토할 만한 후보는 다 봤다는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6배수 후보를 샅샅이 검증한 뒤 올라가는 후보 정도면 이제는 믿을 만하지 않겠나”라며 ‘최근에는 대통령도 공공기관장 후보들의 경우 좌고우면하지 않고 추천자를 곧바로 임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정철학을 공유하면서 전문성도 함께 갖춘 사람’이라는 박 대통령의 인선 조건을 충족시키는 후보가 갑자기 늘어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허태열 전 비서실장이 교체된 이유 중 하나가 공공기관장 인사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많다. 김기춘 신임 비서실장이 취임했기 때문에 인사 문제가 조만간 해결될 것이라는 얘기가 여권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 벌써 한 달 전이다.

최근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항명’ 파동을 비롯해 채동욱 전 검찰총장, 양건 전 감사원장 등도 청와대와 갈등을 빚은 뒤 물러난 만큼 청와대가 인선 작업에 다시 신중을 기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새누리당이 요구하고 있는 대선 캠프 출신 인사들의 ‘자리’ 문제도 청와대의 결정을 미루게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당이 요청하는 후보를 청와대가 공공기관에 추천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시 공공기관운영위원회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후보로 올라가더라도 전문성에서 전직 관료보다 점수가 현격하게 떨어진다는 점이 현실적인 고민이다. 그 사이 대선 캠프 출신 인사들 사이에선 지지부진한 공공기관 인사에 대한 불만이 폭발 직전까지 고조된 상태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은 기관장을 포함해 15인 이내의 이사로 이사회를 꾸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30개 공기업과 87개 준정부기관이 모두 15명의 이사직을 꽉 채우고 있진 않지만 기관별로 2, 3명의 이사만 교체해도 수백 명을 위한 ‘자리’가 새로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사회를 이끌어야 할 기관장 인선이 지연되면서 이사회 의결만 기다리고 있는 감사와 이사 대기자들의 기다림도 한없이 길어지고 있다.

기관장이 없어도 업무만 잘 돌아가면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새 기관장 인사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주요 현안에 대한 판단이 유보되는 등 곳곳에서 업무 누수가 발생하고 있다. 청와대가 공공기관장 인선에 박차를 가해 내부적으로 이달 중 인선을 마무리한다 하더라도 국회 국정감사 등 외부 요인이 적지 않아 ‘공공기관 정상화’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 수자원공사는 이명박 정권에서 4대강 사업을 진두지휘한 김건호 전 사장이 7월 말 사퇴한 이후 2개월 넘게 사장 공석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수자원공사 측은 “일상적인 결정은 이사회를 통할 수 있지만 전략적으로 기업 자원을 배분해야 하는 사업들은 중단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수자원공사는 현재 ‘태국판 4대강 공사’인 태국 물관리 사업 수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수자원공사는 6조2000억 원 규모의 공사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9월 말 최종 낙찰자로 선정될 예정이었지만 아직까지 최종 수주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 역시 9월 초 장석효 전 사장이 물러나며 최봉환 부사장이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도로공사 측은 “새로운 사장으로 누가 올지 몰라 신규 사업 추진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감사 및 이사 등 고위 간부에 대한 후속 인사까지 덩달아 미뤄지며 조직이 사실상 ‘식물’ 상태로 전락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3, 4월에 끝냈어야 할 일을 6개월이나 지난 10월에 하겠다고 하면서도 계속 뜸을 들이는 것을 보면 정부가 공기업 인사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대선 공신들의 자리 문제, 검증 문제 등 걸림돌이 많지만 ‘훌륭한 인사를 가급적 빨리 임명한다’는 ‘베스트(best) 앤드 패스트(fast)’ 전략으로 인선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말했다.

길진균 기자·세종=박재명 기자·권오혁 기자 leon@donga.com
#청와대#공공기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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