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소식통이 전한 ‘로드먼 방북기’
“김정은, 마이애미 해변 어떠냐 묻고… 北은 가장 위험한 국가라며 농담도”
‘고급 승용차를 직접 운전하고 수영과 제트스키, 승마를 즐기는 젊은 지도자. 영어는 그리 유창하지 않지만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호기심이 많은 인물….’
올해 2월에 이어 지난달 초 재방북한 데니스 로드먼(사진) 방북단이 전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에 대한 평가다. 동아일보는 로드먼의 방북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을 통해 로드먼과 김정은이 함께한 이틀간의 행적을 한 달여에 걸쳐 집중 추적했다. 이들이 전하는 ‘김정은 근접 관찰기’를 통해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김정은의 은밀한 사생활과 방북 뒷얘기를 소개한다.
○ “마이애미 해변은 어떻게 생겼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다.”
지난달 3∼9일 방북한 로드먼 일행은 원산 인근 바닷가 별장에서 열린 저녁 술자리에서 김정은이 갑자기 던진 이 한마디에 깜짝 놀랐다. 이틀간의 별장 방문에는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뿐 아니라 형 김정철, 여동생 김여정 등 일가족은 물론이고 국방위원회 관계자도 자리를 함께했다. 김정은은 술기운이 오르자 이같이 말한 뒤 “바로 저 사람들(동석한 국방위 관계자들)이 저렇게 마셔대기 때문”이라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술자리의 농담이었음을 깨달은 뒤에야 분위기는 다시 부드러워졌고 긴장감에 휩싸였던 로드먼 일행도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술자리 분위기가 고조되자 이번엔 일행 중 한 명이 김정은에게 “쓰지도 못할 핵무기는 뭐 하러 만드느냐”며 ‘대담한’ 질문을 했다. 이에 김정은은 통역을 통해 “나는 난처한 입장”이라며 질문의 핵심을 비켜나간 뒤 “미국과 한국은 평화를 원치 않는 듯하다”고 말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핵개발의 불가피성과 함께 한반도 긴장의 책임을 한미 양국에 돌린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알려진 것과 달리 북한에 억류 중인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먼저 언급한 것은 북측이었다. 몇 마디가 오간 뒤 김정은은 어깨를 으쓱대며 “그(케네스 배)가 법을 어겼다”고 단언조로 말해 대화는 더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김정은은 방북단에게 미국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했다. 그는 먼저 “마이애미 해변은 어떻게 생겼나” “워싱턴은 어떤 도시냐”고 물었다. 그는 또 로드먼에게 상당한 호감을 나타내며 자신이 스위스에서 유학 중이던 1997년 프랑스 파리를 찾아가 당시 로드먼이 활약했던 시카고 불스의 친선경기를 관람했다고 말했다.
방북단 일행이 “미국에 오면 (최소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뉴욕 메디슨스퀘어가든의 뉴욕 닉스 팀 경기장 맨 앞좌석 티켓을 꼭 얻어주겠다”고 하자 ‘농구 열혈 팬’으로 알려진 김정은은 매우 즐거워했다.
상당한 주량에 호탕한 성격의 김정은은 로드먼 일행과 이처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술과 함께 노래방기기까지 갖춘 호화스러운 별장에서 함께 어울려 노래를 불렀다. 방북단을 위해 마련한 이틀간의 ‘유흥’에는 북한 최고의 예술단인 모란봉악단이 함께했다.
○ 유명 핸드백 선물에 이설주 반색
로드먼 방북단은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사전 구입한 해외 유명 브랜드의 핸드백을 이설주에게 선물했다. 가격은 약 1600달러(약 171만 원). 이설주는 반색하며 매우 즐거워했다. 이설주가 프랑스 명품 브랜드 크리스티앙디오르 핸드백을 들거나 미국 유명 보석 브랜드 티파니 목걸이를 착용한 사진은 그동안 언론을 통해서도 공개돼 왔다.
별장을 함께 찾은 가족 중 눈길을 끌었던 사람은 김정은의 딸 주애. 아직 걸음마는 하지 못했지만 상당한 우량아였다.
스위스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김정은의 영어 실력은 짧은 문장을 천천히 이야기하면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말이 조금 빨라지거나 문장 구조가 복잡해지면 고개를 저으며 바로 통역을 바라봤다. 평양 외교공관의 한 소식통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김정은의 독일어 실력이 영어 실력보다 더 나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김정철의 영어 실력은 통역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매우 유창한 수준이었다. 김정철은 그동안 북한 고위층 자제 모임인 ‘봉화조’의 수령 역할을 하며 김정은의 통치를 돕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외향적인 김정은과 달리 김정철은 바닷가에서 혼자 자주 시간을 보냈다. 매우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라는 소문이 입증된 셈이다.
로드먼 방북단은 김정은이 스포츠광이라고 평가했다. 자신이 직접 고급차를 운전하기도 하고 로드먼 일행과 함께 수영, 승마, 제트스키와 요트 타기 등을 즐겼다.
○ “우리에겐 싹싹, 연로 국방위 관계자엔 쌀쌀”
김정은은 로드먼 일행이 북한에 체류하는 내내 매우 싹싹하고 격의 없이 대했다. 그러나 나이가 많은 국방위 관계자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을 정도로 매우 권위적이었다. ‘젊은 지도자’ 김정은이 국방위 관계자들을 완전히 장악했다는 느낌을 주는 분위기였다.
별장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김정은은 술과 담배를 즐겼다. 하지만 나중에 노동신문에 게재된 사진엔 김정은의 손에 있던 담배와 곁에 있던 통역의 모습이 모두 지워져 있었다.
방북단원은 특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다이어트 콜라가 대표적인 예였다. 다이어트 콜라 마니아였던 한 방북단원은 평양에 도착한 직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이어트 콜라가 있느냐”고 북측 관계자에게 물었다. 5분도 지나지 않아 얼음잔과 다이어트 콜라가 제공됐다. 이후 가는 곳마다 다이어트 콜라와 얼음잔이 제공됐다. 체류 기간 내내 숙소 안 냉장고에도 다이어트 콜라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방북단 일행이 외출하고 돌아오면 가방 안에 있던 옷까지 세탁과 다림질을 마친 상태로 깨끗이 정리돼 있었다.
로드먼 일행은 또 김정은 측이 제공한 헬리콥터를 타고 금강산 일대를 둘러봤다. 로드먼은 이런 김정은에게 감사의 뜻으로 시카고 불스의 셔츠와 최고급 농구공 3개, 로드먼이 소유한 브랜드인 ‘배드보이 보드카’ 12병을 전달했다.
○ 미 정부, 지속적 교류에 긍정적 태도
미 행정부는 이번 방북 결과를 브리핑 받고 로드먼과 북한의 지속적인 교류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 행정부가 직접 나서 로드먼 방북을 북한과의 접촉에 활용하지는 않겠지만 암묵적 지지를 통해 물밑 접촉의 통로로 활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올해 4월 북한 문제에 정통한 민간전문가 5명을 백악관으로 극비리에 불러 2기 대북정책 기조를 점검하고 가능한 추가 정책 대안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했다. 당시 대북 전략회의(본보 8월 23일자 A6면 [단독]“美, 핵무기 빼고 北과 전면 교류를”)에서 ‘로드먼의 농구 외교 카드를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 바 있다.
로드먼의 재방북에는 평양과기대에서 유전학 강의를 하고 수차례 방북한 조지프 터빌리거 컬럼비아대 교수 등 4명이 동행했다. 북한 동향 보고서를 발간한 국제위기감시기구(ICG)도 방북 전반에 걸쳐 컨설팅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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