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엔 ‘음주’… 노인들엔 ‘질병’… 나이별 맞춤 교통교육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6일 03시 00분


[시동 꺼! 반칙운전]<8·끝>핀란드 전략적 캠페인

‘앵그리버드’가 교통교육 핀란드 헬싱키의 한 초등학교 체육관에서 교통안전 중앙교육기관인 ‘교통안전’ 직원들이 자국의 인기 캐릭터 ‘앵그리버드’ 탈을 쓰고 어린이들에게 안전하게 길을 건너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핀란드 ‘교통안전’ 제공
‘앵그리버드’가 교통교육 핀란드 헬싱키의 한 초등학교 체육관에서 교통안전 중앙교육기관인 ‘교통안전’ 직원들이 자국의 인기 캐릭터 ‘앵그리버드’ 탈을 쓰고 어린이들에게 안전하게 길을 건너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핀란드 ‘교통안전’ 제공
핀란드는 지난해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5.3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9번째에 드는 교통안전 선진국이다. 하지만 핀란드는 오히려 사고가 많이 날 만한 교통 환경을 갖고 있다. 북유럽에 위치해 긴 겨울 때문에 어둡고 도로가 미끄러울 때가 많다. 날씨가 따뜻해질 때는 도로에 순록이 자주 출몰해 골머리를 썩기도 한다.

핀란드가 이런 악조건을 극복한 비결은 뭘까. 유일한 교통안전 중앙교육기관인 ‘교통안전(Liikenneturva)’은 “전략적인 교통안전 캠페인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교통안전공단의 지윤석 박사와 함께 핀란드를 찾았다.

○ 논리가 아닌 감성으로 다가서기

헬싱키 중심가 캄피 인근에 있는 한 초등학교 강당. ‘교통안전’ 직원들이 핀란드의 유명 게임 캐릭터인 ‘앵그리버드’ 가면을 쓰고 아이들의 손을 잡았다. 모형 횡단보도 앞에 선 빨간 새 캐릭터가 신호등이 자신과 같은 빨간색이 됐다며 건너려고 하자 초록의 새 캐릭터가 막아서며 올바르게 길을 건너는 모습을 보여줬다.

길 건너기 교육이 끝나자 ‘앵그리버드’들이 반사물(리플렉터)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반사물 착용은 요즘 핀란드가 가장 주력하고 있는 교통안전 캠페인이다. 반사물은 말 그대로 빛을 받으면 반짝이게 만들어진 물체인데 핀란드 ‘도로교통법 42조’에 도로를 지나는 보행자들은 평상시 이 반사물을 반드시 착용하도록 규정해 놓았다. 물론 아무 반사물이나 되는 것은 아니고 유럽연합이나 핀란드 정부가 정한 규정에 맞는 제품이어야 한다. 반사물은 옷처럼 입는 조끼, 완장, 열쇠고리 등으로 다양하다. 반사물은 밤이 긴 핀란드에서 보행자가 운전자의 눈에 띄도록 하는 데 필수적인 물건이다.

‘교통안전’의 의사소통팀장 카레 오야니에미 씨는 “논리보다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 교통캠페인의 주된 전략”이라며 “어린 아이들에게 친숙한 게임 캐릭터를 이용해 반사물 착용 의무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사물 착용은 규정은 있지만 처벌조항이 없어 캠페인을 통한 의식 개선이 유일한 방법이다. ‘교통안전’은 1997년까지 20% 미만이던 반사물 착용률을 2010년 44%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같은 기간 보행자 사망자 수는 1년에 147명에서 47명으로 줄었다.

반사물 착용으로 밤에도 잘 보이게 한밤중 반사물(리플렉터)의 효과를 보여주는 가상 실험 화면. 보행자가
 자동차의 30m 앞에 있는 경우 보통 옷을 입었을 때(왼쪽 사진)보다 반사물이 부착된 조끼를 입었을 때 전조등 불빛이 반사돼 
보행자가 더 잘 보인다. 핀란드 ‘교통안전’ 제공
반사물 착용으로 밤에도 잘 보이게 한밤중 반사물(리플렉터)의 효과를 보여주는 가상 실험 화면. 보행자가 자동차의 30m 앞에 있는 경우 보통 옷을 입었을 때(왼쪽 사진)보다 반사물이 부착된 조끼를 입었을 때 전조등 불빛이 반사돼 보행자가 더 잘 보인다. 핀란드 ‘교통안전’ 제공
○ 대상을 좁혀서 말해야

오야니에미 씨는 “모두에게 하는 말은 아무도 듣지 않는다”며 캠페인 대상을 세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젊은 사람은 음주운전의 유혹도 많고 흥분도 잘해 자제심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지만 노인들은 자제심은 충분한 반면 시력 저하 등 나빠진 신체능력 때문에 사고를 내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핀란드의 교통안전 캠페인은 모든 연령층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되도록 피하고, 교육 대상의 나이를 고려한 캠페인을 한다. 그는 “고등학생들에겐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죽인 뒤 그 사실을 부모에게 말하는 상황을 연기해 보게 한다. 아이들은 난처해하고 당황스러워하며 음주운전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고 덧붙였다.

취재팀은 핀란드 제2의 도시 탐페레 서부에 있는 시 노인정보센터 강의실에 모인 20여 명의 노인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교통안전 강의를 참관해 봤다. “다들 자기 진단표 받으셨죠? 거기에 적힌 병 이름 중에 자기가 앓고 있는 질병이 있으면 체크해 보세요.” 신경계 질환, 심혈관계 질환, 당뇨, 정신질환…. 화이트보드 앞에 선 ‘교통안전’ 직원이 항목마다 체크한 사람의 수를 세어 본 뒤 설명을 이어갔다.

“당뇨의 경우 혈당량이 떨어질 때가 운전자에게 특히 위험해요. 집중력이 크게 떨어지거든요. 따라서 혈당량이 떨어질 때 자신에게 어떤 증상이 일어나는지 잘 살펴 의사와 상담을 해야 합니다.”

노인들의 경우에는 약화된 신체능력이 운전 중 가장 큰 위협이다. 따라서 노인 대상 안전 교육의 초점은 자신의 신체능력과 운전의 상관관계를 알도록 하는 데 맞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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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 북서쪽 외곽지역에 위치한 ‘교통안전’ 본부는 전국 지점 12곳에 전체 직원이 46명에 불과하다. 핀란드의 인구가 527만 명 정도임을 감안해도 매우 작은 조직이다. 이런 작은 조직이 핀란드의 교통안전을 책임지는 한 축의 역할을 하는 건 이처럼 전략적인 캠페인 덕분이다.

교통안전공단 지윤석 박사는 “우리나라 캠페인은 내용이 너무 평이해서 와닿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핀란드는 아주 체계적이었다”며 “교육대상에게 왜 이 시점에 이런 얘기를 하는지 근거가 명확한 것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헬싱키·탐페레=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핀란드#교통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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