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균의 우울증 이기기]요즘 많이 받는 질문, “선생님, 왜 살아야 하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7일 03시 00분


류인균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장 약대 석좌교수
류인균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장 약대 석좌교수
‘내 집만 마련할 수 있다면 행복하겠지.’ ‘회사에서 이 위치에만 올라가면 안 먹어도 배부를 거야.’ ‘저 사람과 결혼하게 된다면 소원이 없겠다.’ 이렇게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지내던 분들이 갑자기 허무감에 시달리며 진료실을 찾을 때가 있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선생님, 대체 왜 살아야 하나요”라고 물을 때면 나도 입이 턱 막히곤 했다.

연구실의 학생들이 때로 자기가 맡은 일을 잘 해내지 못하거나 지각을 하고 일찍 퇴근을 해도 모른 척 눈을 감아 줄 때가 있다. 바로 박사 논문이 통과된 직후이다. 그동안 바라고 지내 왔던 박사 학위를 받은 학생들은, 잠깐 기쁨을 느끼곤 그 다음에는 ‘이젠 뭘 해야 되나?’ ‘내가 왜 박사 학위를 받았을까?’ 하면서 한두 달 동안 허무감에 의욕이 사라지는 경험을 한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연구를 하면서 고문 생존자들을 만났다. 고문 중에 이들이 가장 괴롭게 느낀 것 중 하나는 ‘의미 없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냥 의미 없이 땅을 파게 하고 다시 땅을 덮게 하는 일 등을 무한정 시키는 것이다.

중년의 환자가 던진 질문, 박사 학위를 받은 학생이 겪는 허무감, 고문 생존자들의 증언이 공통적으로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의미’라는 것이다. 인간은, 세상 만물에 끊임없이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삶의 의미는 쉽사리 발견하지 못하여 괴로워하고, 허무감에 시달리며, 심지어는 목숨을 끊기도 한다.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 파스칼은 ‘팡세’에서 “열정도, 할 일도, 오락도, 집착하는 일도 없이 전적인 휴식 상태에 있는 것처럼 인간에게 참기 어려운 일은 없다. 이때 인간은 자신의 허무, 버림받음, 부족함, 예속, 무력, 공허를 느낀다. 이윽고 그의 마음 밑바닥에서 권태, 우울, 비애, 고뇌, 원망, 절망이 떠오른다”라고 썼는데, 이는 무언가 가치 있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인간이 마주하게 되는 허무감과 우울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라 하겠다.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무엇이 내 인생의 의미인지, 어떻게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알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콜로라도주립대 심리학과의 마이클 스테거 교수는 삶의 의미에 대한 연구만 10년 가까이 해 오고 있는데, 그의 오랜 연구도 인생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정답을 우리 대신 내려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는 인생의 의미를 찾는 데 있어 어디에 주목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제시하고 있는데, ‘목적(purpose)’과 ‘중요성(significance)’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한다. 무언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갖는 것은 우리가 미래에 대한 꿈과 기대를 품게 하고, 현실이 차갑고 괴롭게 느껴질 때도 주저앉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러면 어떠한 목적을 품어야 쉽게 좌절하지도, 쉽게 목표의식을 잃지도 않으면서 계속해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나갈 수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스테거 교수는 목적의 ‘중요성’을 염두에 두라고 제안한다. 우리 각자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결론을 내릴 수 있다면, 이를 위해 어떠한 가치들을 추구해 나가야 할지도 자명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생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해 주고, 허무감과 우울을 극복하게 하고, 나아가 자신과 타인을 행복하게 하는 삶의 목표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의 로버트 에먼스 교수는 다양한 사람들의 글과 설문 응답을 분석하여 그들이 택한 삶의 목표를 내용에 따라 12가지로 분류하였는데 그중 주요한 4가지로 ‘친밀성(intimacy)’ ‘영성(spirituality)’ ‘생산성(generativity)’, 그리고 ‘힘(power)’을 꼽았다.

친밀성은 가족 친구 연인 등과 가까운 상호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욕구를, 영성은 종교 및 영적 체험 등을 통하여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고자 하는 욕구를 반영한다. 생산성은 자녀와 후배 등 후속 세대에 무언가 기여하고 헌신하고자 하는 욕구를, 힘은 자신의 능력을 통해 타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욕구를 드러낸다. 그러나 이 4가지 종류의 목표가 개인이 느끼는 행복에 동일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에먼스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친밀성, 영성, 생산성과 관련된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더 높은 행복감과 긍정적인 감정을 느낀 반면, 힘과 관련된 목표를 가진 사람들은 낮은 행복감과 부정적 감정을 보이는 경향이 있었다.

에먼스 교수의 연구는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기로 결정하는지, 그 자체가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친밀성, 영성, 생산성과 관계된 인생의 목표가 개인의 행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에는 커다란 시사점이 있다고 하겠다. 우리는 인생의 의미를 오로지 자신 안에서만 찾으며 고뇌할 것이 아니라, 밖으로 눈을 돌려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와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치와 의미를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류인균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장 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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