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암환자 가족 울리는 ‘효도 마케팅’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1일 03시 00분


말기 유방암 환자 이모 씨(58·여)는 5월 지인을 통해 암 치료에 용하다는 ‘한의학 박사’ 김모 씨(55)를 알게 됐다. 이 씨와 가족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경기 부천시 소사구 송내동 병원 입원실로 김 씨를 불러 치료를 부탁했다.

김 씨는 “부산에서 한의원 4곳을 운영한다”고 자신을 소개하며 이 씨의 다리와 가슴에 동방침 10여 대를 놓았다. 그러고는 “22가지 특허를 받은 약인데 암을 비롯한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며 캡슐 형태의 제품 3통을 권했다. 기를 불어넣어야 한다며 병실에 있는 이 씨 옆에서 가족들과 하룻밤을 자기도 했다. 김 씨는 진료비와 약값으로 총 200만 원을 받았다.

하지만 김 씨는 한의학을 공부한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김 씨가 ‘만병통치약’이라고 건넨 약도 다이어트용 건강보조식품이었다. 김 씨의 ‘엉터리 진료’를 받았던 이 씨는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하고 7월경 세상을 떠났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김 씨를 의료법 위반과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고 20일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김 씨는 주로 건강보조기구와 식품을 파는 방문판매업체의 행사장에서 노인을 상대로 무면허 진료를 하며 이름을 알렸다. 김 씨는 2004년에도 한의학 박사를 사칭하며 불법 의료행위를 하다가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기도 했던 동종 전과 3범의 상습범이었다.

김 씨처럼 말기암 환자의 절박한 심정을 이용해 돈을 챙기는 행위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A 씨(27)는 암에 좋다는 벌레발효식초와 콜라겐 음료 등을 페트병 한 통당 수십만 원씩 주고 산 뒤 유방암 말기인 어머니에게 먹였지만 아무 효험을 보지 못했다. 최근 어머니를 떠나보낸 A 씨는 “허황된 말인 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울며 겨자 먹기로 약을 살 수밖에 없었다”고 한탄했다.

암환자를 노린 ‘효도 마케팅’은 인터넷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본보 취재팀이 20일 포털 사이트에 ‘말기 암 치료약’을 검색하니 ‘세계 최고 기술력’ ‘말기암 완치 가능’ 등의 근거 없는 문구를 내건 암 치료약 홍보 글이 금세 눈에 띄었다. 이들 대부분은 어려운 의학 용어들을 늘어놓으며 환자들을 현혹하고 있었다.

취재팀은 인삼에 들어있는 물질을 추출해 암 세포를 파괴하는 한약을 판다는 업자에게 환자를 가장해 전화를 걸어봤다. 업자는 “시한부 인생 판정을 받았던 암환자들도 이 약을 먹고 다들 멀쩡해졌다. 웬만하면 항암치료를 받지 말라”며 “특히 간암에는 효과가 100%다. 내 형도 간암이었는데 항암 치료 끊고 이 약을 먹더니 완쾌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 박스에 39만 원인데 처음 한 달은 세 박스를 먹어야 한다”며 “우리 기술은 한의학계에서도 이미 증명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한한의사협회 측은 본보의 문의에 사실무근이라고 답했다.

한의사들은 ‘암 치료 100%’라는 글을 내걸고 홍보하는 제품에 대해 주의를 당부했다. 대한한의사협회 관계자는 “말기 암을 100% 치료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모든 한약은 체질에 따라 효능이 달라 검증되지 않은 한약을 쓰면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의사는 “한의사를 사칭해 그럴싸한 말로 환자들을 현혹하는 사기꾼들 때문에 정식 한의사마저 ‘한무당’이라는 치욕스러운 말을 듣고 있다”며 분개했다.

조동주·곽도영 기자 djc@donga.com
#효도 마케팅#무면허 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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