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추웠던 올해 1월. 정명숙 씨(58·여)의 마음도 날씨만큼이나 꽁꽁 얼어붙었다. 지난해 말 20년 넘게 일한 회사에서 정년퇴직한 뒤 ‘촉탁직’으로 계약했기 때문이다. 정 씨는 “1년 더 일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은 고맙지만 그래도 가슴 한구석이 텅 빈 것 같다”고 했다. 그로부터 약 9개월 뒤 정 씨의 움츠러든 가슴은 활짝 펴졌다. 촉탁직에서 다시 정규직으로 계약한 것.
정 씨가 일하던 ㈜남선알미늄은 올해 9월 노사 합의로 57세였던 정년을 60세로 늘렸다. 이 회사는 직원이 350명이 넘어 2016년부터 정년 60세 의무화가 적용되지만 3년이나 빨리 시작했다. 그 덕분에 정년퇴직 뒤 촉탁직으로 일하던 정 씨 등 근로자 11명이 이달 1일부터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그 대신 57세부터 임금피크제가 적용돼 기본급이 10% 정도 삭감된다. 임금피크제는 일정 연령부터 급여를 깎는 대신 고용기간을 늘리는 방식이다. 하지만 단체협약을 통해 임금 인상이 결정되면 실제 삭감액은 줄어들 수 있다. 정 씨는 “이 나이에 어디에서 이 정도 일자리를 쉽게 구하겠느냐”며 “요즘 우리 회사 생각만 하면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고 말했다.
이 회사처럼 임금체계를 바꿔 인건비 부담을 덜고 대신 정년을 늘려 근로자들의 고용을 보장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2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100인 이상 사업장 가운데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곳은 2005년 2.3%에서 2012년 16.3%로 증가 추세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연공서열에 따른 임금체계가 확고하고 임금피크제가 구조조정이나 인건비 절감을 위해 활용된 탓에 쉽게 확산되지 못했다.
일본의 경우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정년연장에 초점을 맞춘 ‘시니어 사원제도’가 도입돼 다양한 형태로 시행 중이다. 이 제도에 따라 연장되는 정년도 평균 5년 정도로 긴 편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금융기관 공기업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런 방식의 임금체계 개편이 늘고 있다. 린나이코리아㈜는 올해 5월 정년을 60세로 늘렸고 56세부터 임금피크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KB국민은행은 이미 2007년 노사가 임금피크제 도입과 정년 60세 연장에 합의해 시행 중이다.
기업들은 임금체계가 합리적으로 개편되면 정년연장에 따른 부담을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황성재 남선알미늄 과장은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 까다롭거나 힘든 일이 많지 않아 60세까지 일하는 데 체력적이나 기술적으로 부담이 적다”며 “회사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우리는 기존 근로자들이 계속 일하는 게 회사나 근로자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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