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당진시 신평면 서정초등학교는 2011년 3월부터 당진시 학교급식지원센터에서 식자재를 모두 납품받고 있다. 당진시 학교급식운영협의회가 매월 식자재 매입 가격을 책정하면 학교급식지원센터가 이 가격표를 기준으로 학교에 식자재를 공급한다. 과거에는 학교가 매월 5, 6개의 식자재 납품 업체를 일일이 선정했다. 영양사 1명이 모든 식자재의 품질을 관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다른 학교에서 급식 비리가 발생하면 덩달아 학부모들의 의심 어린 눈초리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운 급식 제도를 도입하면서 달라졌다. 박상순 서정초등학교 행정실장은 “급식 비리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됐고 학생들도 신선한 지역농산물(로컬푸드)을 먹게 됐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는 지역 농협을 중심으로 지방자치단체, 생산자, 소비자가 함께 로컬푸드 학교급식 운동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시도하고 있는 국내 현장을 취재했다. 》
○ 유통 경로 단축으로 신선도 향상
당진시는 2011년 3월 당진농협해나루법인에 시 학교급식지원센터 운영을 위탁하고 당진시 소재 학교 89곳의 식자재 납품을 모두 맡겼다. 급식 대상만 2만여 명에 달한다. 식자재 관련 예산은 연간 100억 원 정도로 이 중 농산물만 30억 원에 이른다. 당진농협해나루법인이 학교급식 식자재 유통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 농가에서 농산물을 직접 사들이고 학교에 납품하는 방식이다.
학교급식지원센터가 학교급식 식자재 납품을 총괄하면서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식자재의 신선도가 향상됐다는 점이다. 전체 농산물 중 60%가 로컬푸드로 채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농가가 농산물을 수확하면 서울 가락농수산물시장에 보낸 뒤 다시 전국 유통망을 통해 공급받는 방식이었다. 이런 유통망을 거치면 통상 3∼7일이 더 소요됐다. 또 당진에서 같은 품목의 농산물이 생산되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지역의 농산물을 소비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학교급식지원센터가 농가에서 받은 농산물을 분류한 뒤 바로 학교에 배달하면서 학교급식에서 소비되는 로컬푸드의 비율이 크게 늘었다. 농산물의 신선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급식 비리 차단과 위생사고 예방도 가능해졌다. 당진에서는 매년 몇 차례씩 발생하던 학교급식 식중독 사고가 2011년 3월 이후 자취를 감췄다. 소규모 학교의 경우 납품업체가 이윤을 내지 못해 일부 품목의 배달을 꺼리던 현상도 사라졌다. 급식센터가 일괄 구매하면서 모든 품목의 공급이 가능해졌다. 이전에는 농산물과 축산물, 가공식품 등 5, 6개 납품업자가 학교에 따로 배달했다. 센터가 모든 식자재의 유통을 책임지면서 한 대의 트럭으로 모든 식자재를 한꺼번에 배달해 운송비용도 그만큼 줄었다.
○ 농가-유통센터도 도움
센터의 식자재 납품 방식은 농민들에게도 이득을 안겨줬다. 이 지역 생산 농산물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지 않고 해당 지역에서 소비해 생산 농가는 물류비와 포장비, 공판장 수수료 등을 아낄 수 있다. 그에 따라 이윤이 20∼30% 더 늘어났다. 폭락과 폭등을 거듭하는 농산물 가격도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센터는 농가와 연간 단위로 재배 계약을 맺었다. 농민들은 농산물 가격이 폭락해도 사전에 계약된 가격에 따라 농산물을 팔 수 있다. 마찬가지로 농산물 가격이 폭등할 때는 더 받지는 못하지만 그 대신 농민들은 안정적인 수입을 올릴 수 있게 됐다. 이부원 당진농협해나루법인 대표는 “올해 감자는 kg당 550원, 고구마 kg당 1000원, 양파 kg당 650원 정도로 농산물 수매가격이 책정됐다”고 말했다.
센터는 2011년 4억6000만 원의 손실을 기록했으나 올해는 손익분기점을 넘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참여 학교와 농가가 늘어나 규모의 경제를 실현했고 결과적으로 비용을 더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참여 농가는 2011년 3월 300가구에 불과했으나 올해는 800가구로 늘었다. 장근순 당진시 학교급식지원센터 단장은 “학교에 납품하는 식자재 중에서 로컬푸드의 비중을 80∼90%까지 높여 나갈 계획”이라며 “생산 농가와 협의를 거쳐 농산물의 재배 시기를 조절하면 로컬푸드의 비중을 높이는 게 가능하다”고 말했다. ▼ 로컬푸드 학교급식 확대하려면 ‘중심’ 세워라 ▼ 복잡한 협의과정 단순화하고… 지자체 실정에 맞게 운영해야
학교급식지원센터는 학교 급식에 필요한 식자재의 구매와 공급을 총괄하는 기관이다. 학교급식 과정에서 식중독 등 각종 위생사고가 발생하자 이를 예방하기 위한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현재 경기 고양시 등 전국 28개 지방자치단체에 센터가 설치됐고 이 중 22개 센터는 충북 오창농협 등 지역 농협이 운영 주체로 참여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학교급식은 방학 기간을 빼면 통상 180일 정도만 제공되기 때문에 식자재 공급업체는 안정적으로 사업을 하기 어렵다. 광역시를 뺀 대부분의 중소도시와 농촌지역의 학교는 지역적으로 분산돼 있고 학생 수도 적어서 물류 측면에서 효율성이 떨어진다. 벽지나 오지의 일부 학교에는 식자재 배달 자체가 어려울 때도 많다. 또 한 식단에 농산물, 축산물, 가공식품, 수산물 등이 동시에 사용되는 다품목 소량 주문의 형태를 띠고 있어 납품업체로서는 납품 단가를 낮추기 어렵다.
이 때문에 주로 영세업체들이 학교급식 식자재 납품을 맡게 되면서 종종 위생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학교급식의 식자재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기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된 이유 중 하나다. 정부와 지자체는 2006년 농협과 함께 부산과 나주, 거창 등에 학교급식지원센터를 시범 운영했고 이후 다른 지자체들도 센터를 설립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생산농가들이 지역 농산물을 지역 내 학교에 우선적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농가로서는 로컬푸드의 지역 내 학교급식 공급을 통해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고, 아이들은 신선한 먹거리를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목소리에 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도 호응이 높지만 전국적인 확산을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현행법상 학교급식은 계획 수립과 재정지원은 교육감이 담당하고 자치단체장은 경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실행 주체는 학교장이 맡고 있다. 급식센터 설치 운영 주체는 자치단체장이다. 이 때문에 학교급식지원센터를 운영하려면 교육감, 학교장, 자치단체장 간의 복잡한 사전 협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기존 납품업체들의 반발도 과제다. 성공 사례로 꼽히는 충남 당진농협해나루법인 역시 출발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기존 식자재 납품업체들이 일감을 빼앗기게 되자 크게 반발했다. 농협중앙회 식품사업부 관계자는 “학교급식지원센터는 학생들의 안전한 먹거리 확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농민들과 계약재배를 통해서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식자재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각 지자체 사정에 맞게 센터를 설치, 운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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