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마라톤 뛰는 41세 윤선숙 “아직도 제가 우승해야만 하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4일 03시 00분


전국체전 1위 뒤 후배들에 일침 “재능 있는데 쉽게 포기 너무 답답”

41세의 나이에 전국체전 여자 마라톤 풀코스에서 우승한 ‘철녀’ 윤선숙(강원도청·오른쪽)과 팀 후배 김도연. 인천=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41세의 나이에 전국체전 여자 마라톤 풀코스에서 우승한 ‘철녀’ 윤선숙(강원도청·오른쪽)과 팀 후배 김도연. 인천=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20일 인천에서 열린 제94회 전국체전 여자 마라톤 풀코스에서 41세의 ‘노익장’을 과시하며 2시간38분31초로 우승한 윤선숙(강원도청)은 쉴 틈이 없었다. 그날 오후 여자 5000m에서 15분55초59로 우승한 팀 후배 김도연(19)의 컨디션을 점검해 줘야 했기 때문이다. 몸 푸는 것을 지켜보고 워밍업이 덜 된 것 같으면 마사지도 해줬다. 2008년부터 플레잉코치를 하고 있는 윤선숙은 김도연이 22일 여자 1만 m에서 32분57초26으로 우승할 때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빈틈없이 관리했다. 윤선숙은 김도연이 1만 m 결승선을 통과하고 나서야 “이제 좀 쉴 수 있겠네요”라며 웃었다.

윤선숙은 1992년 마라톤에 입문해 21년간 풀코스를 31회 완주하며 우승만 12번 한 ‘철녀’다. 마라톤인들은 딴짓하지 않고 마라톤에만 집중하며 숱한 우승을 거머쥔 성실의 대명사 이봉주에 빗대 ‘여자 이봉주’로 부른다. 하지만 윤선숙은 “내가 아직도 우승하는 한국 마라톤의 현실이 안타깝다”며 한숨을 쉰다. 이번 여자 마라톤에서 2위를 한 안슬기(20·SH공사)와의 나이 차가 무려 스무 살. 20, 30대 젊은 후배들이 선수론 ‘할머니’인 자신보다 뒤에서 달리고 있는 것에 “내가 잘난 게 아니라 후배들이 노력을 하지 않아서”라고 잘라 말한다.

“해보지도 않고 지레 ‘난 안돼’라고 말하는 후배가 많다. 뭐든지 일단 해보고 안 된다고 해야 하는데 대회에 출전하기도 전에 포기하는 아주 못된 행태가 한국 마라톤을 뒷걸음치게 하고 있다.”

윤선숙은 후배 김도연에게 “나도 하는데 넌 더 잘할 수 있다”는 말을 자주한다. 마라톤에서 기록을 잘 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스피드가 없어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뛰는 집념 하나로 숱한 우승을 거머쥐었는데 훨씬 좋은 능력을 갖고도 노력하지 않는 후배들을 많이 봐서다. 전문가들은 윤선숙이 더 좋은 스피드를 가졌었다면 국제무대에서 훌륭한 성적을 거뒀을 것으로 평가한다. 윤선숙의 최고기록은 2시간31분21초로 한국기록(2시간26분12초)에 크게 뒤진다.

윤선숙은 “(김)도연이는 몸도 타고났고 지구력 스피드도 좋다. 조금만 관리해 훈련하면 국내는 물론이고 국제무대에서도 통할 실력을 만들 수 있다. 나보다 훨씬 좋은 기록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선숙은 훈련 파트너는 물론이고 심리상담가 역할도 하는 등 친언니같이 김도연을 보살피고 있다. ‘은퇴는 언제 하느냐’는 질문에 윤선숙은 “후배들을 위해 그만 달려야 하는데 다시 후배들을 생각하면 계속 달려야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나도 하는데 너희는 뭐 하냐’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얘기다.

윤선숙은 “마라톤을 잘하면 먹고사는 데도 큰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힘은 들지만 땀 흘린 만큼 보상을 받는 아주 정직한 스포츠”라고 덧붙였다. 실업팀에서 잘하면 연봉과 상금 등 1년에 1억 원 가까이 벌 수 있다. 국제 경쟁력이 있는 선수는 훨씬 더 잘 번다. 윤선숙은 20년 넘게 선수생활을 하며 상당한 부를 축적해 ‘봉달이’ 이봉주와 함께 마라톤계의 ‘알부자’로 알려졌다.

인천=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제94회 전국체전#여자 마라톤#윤선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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