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계에는 거장이라 불리는 두 명의 ‘봉 감독’이 있다. 한국인 대부분이 아는 봉준호 감독(44)과 ‘아는 사람만 아는’ 봉만대 감독(43)이다. 비슷한 또래지만 걸어온 길은 다르다. 전자가 양지에서 주목받는 보통(?)의 거장이라면 후자는 음지에서 사랑받는 ‘에로’ 거장이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설국열차’로 900만 관객을 찍으며 승승장구하던 8월 말, 봉만대 감독은 자신의 24번째 영화 ‘아티스트 봉만대’를 내놨다. ‘아티스트 봉만대’는 에로영화 촬영현장을 페이크(fake) 다큐 형식을 빌려 그린 영화다. 평단에서는 ‘에로 이전에, 웰 메이드 캐릭터 코미디’(영화평론가 김형석)라는 호평을 받았지만 3주가 채 안 되는 기간만 스크린에 걸려 1만4000명이 조금 넘는 관객이 들었다(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양지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음지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투쟁의 역사에서 남는 건 피밖에 없어요. 과거에 대한 후회는 없지만 피로 얼룩졌죠.”
봉만대 감독의 첫인상은 ‘기대와 달리’ 까칠하고 진지했다. 그는 그동안 살아왔던 인생을 투쟁의 역사라고 표현했다. ‘인생을 바꾼 무엇에 대해 얘기하자’는 말에는 “내 인생을 바꾼 것을 어떻게 한두 개로 정리할 수 있나. 지금 이 순간에도 인생이 변화 중”이라며 맞받아쳤다. 사실 이런 ‘삐딱함’은 열여섯 살, ‘공부만 열심히 하라’는 학교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극반을 만들어 활동할 무렵부터 그가 견지해온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광주 출신으로 4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난 봉만대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형편이 어려운 집안에서 ‘에술’(예술)을 하겠다며 홀어머니를 속 썩였다.
“어머니는 아들이 좋은 대학 가서 평범하게 넥타이 매길 바라셨죠. 우리 집은 ‘가난해서 안 된다’고 하시면 ‘왜 예술은 돈 많은 사람만 해야 하느냐’며 필사적으로 대들었어요.”
뜻이 맞는 친구들과 광주 유일의 극단을 기웃거리며 어깨너머로 연기를 배우고,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기론 같은 책을 읽었다. 그러나 그렇게 뜨거웠던 연기에 대한 사랑은 서울의 대학 연극영화과에 2년 연속 낙방하며 막을 내린다.
“내 외모나 사투리 발음이 배우하기엔 한계가 있었어요. 대학에서 떨어진 게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계기는 됐죠. 미치게 좋아했던 게 아니니까 그렇게 쉽게 포기한 거겠지만.”
대학에 다시 응시하는 대신 영화판으로 길을 돌렸다. 스무 살, 영화인생이 시작됐다. ‘비디오 유통업’을 하는 사촌형을 찾아 상경했다.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리면 영화감독이 될 것”으로 믿으며 버스에 올랐다.
“터미널에서 어머니와 헤어지며 ‘서른이 되기 전 영화감독이 되지 못하면 (광주로) 돌아오겠다’고 말했어요. 어머니가 그때 손에 쥐고 있던 10만 원을 주시더군요. 나 자신이 하나 대견한 게 있다면, 그 후로 어머니에게 단 한 번도 손을 벌린 적이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얘기…, 너무 신파적이지 않나요?”
‘돌아온 손오공’ ‘영웅 후레시’ 같은 아동물의 스태프로 영화 일을 시작했다. 군대를 다녀온 후에는 강용규 감독(‘아티스트 봉만대’에서 섹시화보 사진작가 역으로 출연) 밑에서 여러 액션영화의 조연출을 맡았다.
에로와는 무관한 경력을 쌓았던 그가 에로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 것은 1998년 “자신의 작품을 해보고자” 영화사를 차린 후였다. 그는 비디오 출시용 16mm 에로영화(이하 에로비디오)를 ‘적은 비용을 들여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매체’로 보았다. 1999년 일본 자본의 투자를 받아 ‘도쿄 섹스피아’를 만들었다. 당시 나이 스물아홉. 어머니와 약속처럼 서른 전에 감독이 됐다.
이후 2003년 극장용 영화를 내놓기 전까지 ‘이천년’ ‘연어’ ‘일심’ ‘고자질’ ‘모모’ ‘디지털 비디오’ ‘아파바(아름다운 파도와 바다)’ 등 총 15편의 에로비디오 작품을 연출했다. 1996년 ‘젖소부인 바람났네’를 필두로 온갖 가슴 큰 부인들의 불륜이 난무했던 에로비디오 시장에서 ‘봉만대표 비디오’는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에로천재’ ‘에로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한 게 이때부터다.
“에로영화가 뭔가요? 막무가내로 벗기는 게 아니에요. 이야기 안에 에로티시즘이 관통해야죠. 그러니까, 케이블 채널이나 비디오에서 본 야한 영화가 에로 장르의 전부는 아니에요.”
문학(?)적인 제목에 감각적 영상, 성인물답지 않게 노출을 자제하고 이야기에 힘을 쏟은 그의 작품은 여타의 에로비디오와 선을 그었다. 영화 전문지에서 그의 ‘미학적 베드신’에 주목했을 정도. 봉 감독은 “당시 4박 5일 꼬박 날을 새우며 영화 한 편을 찍어냈다”며 “에로라는 장르에서 나름의 ‘문학’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저는 에로가 가장 리얼한 장르라고 생각해요. 멜로는 사랑의 판타지를 그린 건데, 버리고 버림받는 관계에서 판타지가 어디 있어요? 에로는 사랑을 막대사탕처럼 빨다가 단물은 다 사라지고 남은 막대 같은 거예요.”
에로비디오 시장에서 ‘작품성’과 ‘흥행성’을 인정받은 봉 감독은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맛섹)으로 2003년 스크린에 데뷔했다. 비디오 시장이 인터넷에 밀리기 시작했던 시점이었다. 온라인 성인사이트에서 몇 분, 몇 초짜리 영상을 택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동네 비디오 가게 구석에 찾아가 90분짜리 ‘빨간 딱지’ 비디오를 빌리는 일은 추억으로 사라졌다. 그는 이제 ‘에로비디오를 찍다가 충무로에 캐스팅된’ 특이한 경력의 감독으로 남았다.
“‘맛섹’을 찍을 때 에로비디오 감독 출신 스크린 데뷔라고 관심을 받는 게 싫었어요.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똑같이 하고 있고 다만 매체만 달라진 건데 왜 자꾸 구분 지으려 하는지….”
‘에로’라면 무조건 낮춰 보는 시선이나 오해는 그가 여전히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가까운 가족을 설득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아들의 첫 극장 데뷔작을 ‘맛있는 섹스’ 대신 ‘맛있는 센스’로 주변에 알리셨던 어머니는 이제 든든한 후원자가 됐지만, 목사인 둘째 형은 여전히 동생의 영화를 마땅치 않게 본다.
“저는 크리스천이에요. 그런데 그게 왜 문제가 되나요. 사랑과 섹스가 우리 삶을 지탱해 주는 게 얼마나 많나요. 저도 결국 사람의 얘기를 하는 건데요.”
10년 충무로 생활은 감독으로서 그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난 중요한 기간이었다. 그는 ‘맛섹’ 이후 영화 ‘신데렐라’ ‘맛있는 상상’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와 드라마 ‘TV 방자전’을 연출했다. 그 사이 결혼도 하고 아들, 딸도 낳았다. 스스로를 “뼛속 깊숙이 마이너하다”라고 말한 봉 감독은 이 시기에 대해 “상업영화계 안에서 몸부림친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최근작 ‘아티스트 봉만대’는 “이상은 A급이지만 현실은 B급”인 에로영화 감독으로 살아온 10년의 고백이다.
영화는 에로공포영화 촬영 중 감독이 교체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렸다. 영화에서 봉 감독이 연기(?)한 봉만대 감독은 에로티시즘을 승화시키고자 의지에 불타오르지만 여배우는 예정에 없던 노출 요구에 반발한다. 그 와중에 제작자는 ‘더 딥한’ 베드신을 요청하며 섹시화보를 찍으러 사진작가까지 불러들인다.
“페이크 다큐지만 영화 속 에피소드는 실제 제 얘기예요. 따로 각본은 없었어요. 출연하는 모든 배우에게 대략적인 상황만을 던져주고 하고 싶은 대로 말하라고 했어요.”
영화에서 연기를 빌려 제작자에게 “너희가 에로를 알아?”라고 소리치면서 통쾌했다는 그는 영화 시사회 후 과거 함께 작업한 제작자로부터 “그때 미안했다”는 사과도 받았다.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이었지만 그래도 흥행 성적은 아쉽다. 그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에로 장르를 대하는 대중의 시각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런데 왜 굳이 에로를 고집하나.
“내가 잘할 수 있는 장르니까. 그리고 이렇게 에로를 포기하면 사생아가 될 것 같아서. B급 문화도 잘 정착되어야 A급도 있는 거 아니겠어요.”
여성도 즐겁게 볼 수 있는 에로영화를 만드는 게 꿈이라는 봉 감독은 현재 에로틱 사극 ‘오색동상전’을 준비 중이다. 사람도 잘 안 만나고 하고 싶은 일만 했던 과거와 달리 요즘에는 충무로의 감독들과도 교류도 하고 대외활동도 늘었다. 스마트폰영화제를 통해 알게 된 이준익 감독은 그에게 종종 ‘가벼워지라’고 조언한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예능 프로그램인 MBC ‘라디오 스타’에 나와 입담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제 그 오랜 투쟁의 역사는 끝난 걸까.
“나이가 드니까 기존 시스템과 적당한 타협 지점은 생겼죠. 타협 아닌 소통으로 볼 수도 있고요. 물론 그렇다고 시스템에 나를 집어넣진 않을 거예요. 그건 변하지 않아요.”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 봉만대 감독이 추천하는 에로틱 시네마 5선 ▼
땡볕 (1985년)
여성을 통해 시대상을 다룬 하명중 감독의 작품. 여주인공 조용원의 연기가 특히 성숙했다. 에로틱하면서도 슬픈 장면이 많다. 형편상 원치 않는 성관계를 한 후 돈을 입에 물고 냇가에서 아랫도리를 씻어내던 조용원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나인 하프 위크 (1986년)
킴 베이싱어와 미키 루크 주연. 일상에서 출발했다가 사디즘과 마조히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다시 사랑으로 돌아온다. 9주 반, 두 달 정도의 시간은 사랑의 변화를 이야기하기 좋은 기간이다. 에이드리언 라인 감독의 세련된 화면도 좋다.
말레나 (2000년)
주세페 토르나토레 연출. 광주민주화항쟁 시기 유년기를 보낸 내 모습과 닮은 데가 있어 좋아한다. 전쟁에 처한 여성의 이야기를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보여준다는 설정이 좋다. 모니카 벨루치의 ‘벗었으나 벗지 않은 듯한’ 연기도 훌륭했다.
그녀에게 (2002년)
노출 장면이 거의 없어 이 스페인 영화를 에로틱하다고 하면 의문을 던지는 사람이 많다. 내가 주목한 건 이 영화의 정서와 이야기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독특한 서사구조를 차분하게 끌고 가는 게 인상적이다.
색,계 (2007년)
에로 영화는 아니지만 에로틱의 정점을 찍은 작품이다. 탕웨이와 량차오웨이의 베드신은 무척 애크러배틱하다. ‘방중술’에 등장하는 용이 호랑이를 잡아먹는 체위를 제대로 묘사한 듯하다. 리안 감독이 캐릭터의 특징을 담아 연출한 섹스 장면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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