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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스탈린 부자 비극, 장남 포로수용소서 총살
동아일보
업데이트
2013-10-27 12:02
2013년 10월 27일 12시 02분
입력
2013-10-27 12:02
2013년 10월 27일 12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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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서프라이즈' 스탈린
27일 방송된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는 구소련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장남 야코프 주가슈빌리(1908~43)의 짧고 비극적인 생애가 전파를 탔다.
'서프라이즈'에 따르면, 스탈린은 첫 부인 소생인 장남을 가혹하게 대했다. 스탈린이 유난히 사랑했던 첫 부인 스바니제는 아코프 쥬가슈빌리를 낳고 난 뒤 발진티푸스로 숨졌기 때문에 아내와 닮은 아들을 멀리했다는 것이다.
생후 8개월 때 모친을 잃고 아버지의 냉대 속에 10대 시절부터 여러 여자와 차례로 동거했던 주가슈빌리는 1937년 포병학교에 자원입대한다. 생전에 "비폭력적이고 조용하던" 그의 성격상 의외의 일이었다.
1941년 5월6일 포병학교를 졸업한 야코프 주가슈빌리는 사흘 뒤 제14탱크사단의 제14곡사포연대 중대장으로 임관했다.
6월22일 나치가 불가침조약을 깨고 소련을 침공하자 임관 한 달 반 만에 포대를 이끌고 당대 최강의 전투력을 갖춘 독일군과 대적했다. 교전 3주 만에 소련군 130만명이 죽거나 생포될 정도로 상황은 좋지 않았다. 사실상 스탈린은 군대를 사지로 보낸 셈이었다.
야코프 주가슈빌리는 필사적으로 싸웠다. 하지만 7월14일 소련군 후퇴를 엄호하다가 독일 폭격기 30대의 공습을 받고 포로로 잡혔다.
아들의 투항 사실을 안 스탈린은 아들을 구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독일군은 스탈린에게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포로가 된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원수와 쥬가슈빌리를 교환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스탈린은 아들을 모른다고 했다.
독일군에 포로로 잡혀 수용소에서 지내던 쥬가슈빌리가 수용 생활의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난동을 부리다 수용소 초병에 의해 사살됐다.
초병이 정지를 명령했지만 쥬가슈빌리는 오히려 욕을 하고 상의 깃을 찢으면서 "돌아갈 곳이 어딨느냐? 나를 쏘라"고 소리를 질렀다.
아들의 죽음을 알게 된 스탈린은 평생 죄책감에 살았다. '서프라이즈'에 따르면 사실 스탈린은 공개적으로 아들의 구명을 포기한 후 비공식적으로 아들을 구출하기 위한 작전을 펼쳤다고 한다. 하지만 2번의 작전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사진=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 스탈린
<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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