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안영식]류현진이 7차전에 등판했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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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식 스포츠부장
안영식 스포츠부장
손자병법에는 4종류의 장수(將帥)가 등장한다. 용장(勇將)은 지장(智將)을 이기지 못하고, 지장은 덕장(德將)보다 한 수 아래이며, 덕장도 복장(福將)에게는 어쩔 도리가 없다고 했다. 복장은 바로 운장(運將)을 뜻한다. 올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두산 김진욱 감독은 ‘언터처블 운장’이었다.

앞선 이닝에서 3차례 실점 위기를 넘긴 두산은 8회말 수비 무사 1, 2루에서 삼성에 1-1 동점을 내줬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두산은 역전을 허용하지 않고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 갔다. 두산은 10회말 1사 만루, 11회말 1사 1, 3루의 벼랑 끝에서도 버텨냈다.

‘미러클 두산’의 대미는 오재일이 장식했다. 연장 13회초 삼성의 특급 마무리 오승환의 시속 151km 초구를 잡아 당겨 역전 솔로홈런을 터뜨렸다. 기세가 오른 두산 타선은 이후 3점을 추가하며 사실상 승부를 갈랐다.

행운과 불운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다. ‘위기 뒤엔 기회’라는 야구계의 속설과도 일맥상통한다. 내년에 미국 진출을 타진하고 있는 오승환은 비록 패전투수의 멍에를 썼지만 이날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마무리 투수가 무려 4이닝 동안 53개나 공을 던졌지만 강판되기 직전까지도 슬라이더가 145km를 기록하는 등 구위는 여전히 위력적이었다. 특히 두산 타자 6명을 연속 삼진으로 돌려 세우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최근 미국 언론은 ‘불세출의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가 은퇴한 뉴욕 양키스가 오승환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기사를 잇달아 게재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류현진(LA 다저스)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7차전 등판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오히려 다행일지 모른다’고 얘기하는 팬들도 있다. 만약 다저스가 6차전에서 승리해 최종 7차전 바통이 류현진에게 넘어왔다면 신인으로서는 감내하기 벅찬 부담감에 3차전처럼 호투(7이닝 무실점)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 듯하다.

혹시 패전투수가 되고 ‘월드시리즈 진출 실패’의 원성이 모두 자신에게 쏟아졌다면 과연 류현진이 29일 귀국 인터뷰에서 밝은 얼굴로 “올 시즌 나의 성적은 99점”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을까. 6차전에서 7실점으로 무너진 다저스의 에이스 클레이턴 커쇼는 “나 때문에 졌다. 월드시리즈 우승이 아니라면 포스트시즌 진출이나 꼴찌를 한 것이나 다를 게 없다”며 자책했다.

화가 복이 될 수도, 복이 화가 될 수도 있는 전화위복(轉禍爲福) 사례는 우리 주변에 많다. 특히 야구는 빗맞은 타구가 안타가 되고 잘 맞은 타구가 야수 정면으로 날아가 아웃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 의미에서 코칭스태프 실수로 두산 선발투수 유희관이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조기 강판된 것이 우승 향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다.

교통사고로 입원했다가 우연히 암을 조기 발견해 완치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는 심혈관계 질환 치료제 개발에 엄청난 투자를 했지만 부작용이 발견돼 낭패를 봤다. 하지만 그 부작용 물질은 현재 세계적으로 한 해 2조 원어치 이상 팔리는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 탄생의 결정적인 단초가 됐다.

세상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 호사다마(好事多魔)다. 마구간을 뛰쳐나간 수말이 멋진 암말을 데려오기도 한다. 좋은 일이 이루어지려면 많은 풍파를 겪기 마련이다. 행복이 불행의 끝이 아니듯 불행도 결코 행복의 끝은 아니다.

안영식 스포츠부장 ysahn@donga.com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두산#오승환#류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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