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형무소에서 징역 산 놈과 똑같아. 일단 들어가면 나올 수가 없어. 한국 나오려면 다리를 잘라야 혀. 그래서 다리를 자르려고 했당께. 석탄 구루마(수레)가 오면 집어넣어 부면 똑딱 잘라지제.”(광주 출신 이모 씨의 증언)
총리실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이하 위원회) 진상조사보고서의 한 구절이다. 이 씨는 1940년대 태평양전쟁 시절 일본 나가사키(長崎) 현 나가사키 시의 작은 섬 하시마(端島)에 강제로 징용됐다.
당시 하시마에는 약 800명의 한국인 노동자가 징용됐다. 각종 조사 자료에 따르면 하시마는 ‘지옥’과 같았다. 올해 9월 일본 정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28곳 중 하나로 일본인에게는 자랑스러운 역사현장일지 모르지만 이면에는 한국인 징용 근로자의 한(恨)과 피눈물이 밴 곳이다.
○ 거대한 감옥섬…군함도(軍艦島)
지난달 2일 직접 현장을 가봤다. 도쿄(東京)에서 비행기로 나가사키까지 간 뒤 나가사키 항구에서 페리로 약 20분이 걸렸다. 갑자기 페리가 오른쪽으로 기우뚱했다. 승객들이 일제히 일어나 오른쪽 갑판으로 몰려가 카메라 셔터를 눌렀기 때문이다. 공상과학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흉측한 콘크리트 섬, 하시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북 480m, 동서 160m에 총면적 6만3000m²밖에 되지 않는 하시마. 나가사키 주민들은 하시마라고 말하면 모르고 ‘군함도’라고 말해야 이해했다. 섬 모양이 군함을 닮았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섬 둘레엔 10m 높이의 콘크리트 제방이 둘러쳐져 있었다. 애초 섬 크기는 지금의 절반도 안됐지만 여섯 차례에 걸쳐 매립을 하고 콘크리트로 뒤덮어 지금의 크기가 됐다. 제방 안에는 4∼10층 아파트가 삐죽삐죽 솟아 있었다. 창문은 깨져 사라졌고 일부 건물은 기울어져 곧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현재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가 됐다.
나가사키 시는 2009년 4월부터 이곳에 관광을 허용했다. 기자가 찾았을 때 70명이 탈 수 있는 페리는 만석일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가이드 고바타 도모지(木場田友次·75) 씨는 과거 군함도에서 일한 노동자였다. 고바타 씨는 “지하 1km 정도 되는 가장 위험한 곳에 주로 조선인 노동자들이 투입됐다”고 회고했다.
작은 섬을 매립해 키우고 한국인까지 징용한 것은 석탄 때문이다. 발열량 높고 질 좋은 석탄이 나오자 미쓰비시(三菱)광업은 일본 전역에서 노동자들을 모집했다.
고바타 씨는 군함도 북측을 가리키며 “북쪽 끝에 한국인 노동자, 남쪽 끝에 중국인 노동자 숙소를 뒀다. 하루 2교대로 일했는데 항상 한국과 중국 노동자의 근무시간은 달랐다. 시위를 할까 봐 일부러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햇빛이 잘 드는 아파트 상층부는 일본 간부들 차지였다. 한국인 노동자들은 1층 혹은 2층에서 살았다. 약 10m² 크기의 방에 8명이 잤다. 제방 바로 옆이어서 파도가 치면 방으로 바닷물이 들어와 옷이 젖기도 했다.
노동조건도 열악했다. 좁은 갱내에서 구부려 걸으면서 석탄을 캤고 대바구니에 가득 채운 석탄을 100∼200m를 기어서 날랐다. 작업 중에는 일분일초의 휴식도 없었다. 탈출하다가 붙잡히면 거꾸로 매달아 솔잎을 태워 그슬리는 가혹한 징벌을 받았다.
최전성기인 1960년에는 5300명 가까이 살았다. 좁은 섬에 국내외 노동자들이 몰리다 보니 집의 층수가 올라갔다. 일본에서 최초로 철근 콘크리트 아파트가 지어진 곳이 바로 이곳 하시마다.
석탄은 전쟁물자로 요긴하게 사용됐지만 제1의 에너지원이 석유로 바뀌면서 석탄산업은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결국 군함도의 광산은 1974년 모두 문을 닫았다.
관광객들은 이 같은 역사를 알고 있을까. 도쿄에서 왔다는 다카키 료스케(高木良輔·35) 씨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거라고 해서 자랑스러운 마음에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에게 한국인의 강제징용 사실을 알고 있는지 물었더니 “그런 일이 있었느냐”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현재 군함도는 영화, 뮤직비디오, 게임, 드라마, 소설의 무대가 되고 있다. 하지만 아픈 역사의 진실을 제대로 드러낸 작품은 없다.
○ 현지인도 모르는 유적지
지난달 4일 후쿠오카(福岡) 현 기타큐슈(北九州) 시 야하타(八幡) 역. 역무원에게 세계문화유산 등록 후보인 야하타 제철소의 수선공장 위치를 물었다. 역무원은 동료 직원에게까지 물어보더니 “모르겠다”고 답했다. 야하타 역 인근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도 위치를 몰랐다.
기타큐슈 시 세계유산등록추진실에 전화해서야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추진실은 “일반인들은 출입할 수 없다. 세계문화유산 추천 기념으로 개방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아직 최종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가봤더니 야하타 제철소 운영 기업인 신일철주금(新日鐵住金·옛 일본제철)은 제철소 주위에 철조망을 쳐 놓고 ‘회사 소유지이니 일반인 출입금지’라는 푯말을 붙여 놨다.
나가사키 시에는 한국인 징용 유적지 다섯 곳이 있는데 일반인이 출입할 수 있는 곳은 군함도와 나가사키 조선소의 나무틀 제작소뿐이다. 나무틀 제작소는 원래 조선용 주물을 만들기 위한 나무틀을 제작하는 곳인데 1985년 조선소의 사료관으로 바뀌었다.
규슈 주민들은 일본 정부가 메이지 유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 한다는 소식은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유적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기자가 리스트를 보여줘도 과거 어떤 역할을 한 곳인지, 위치는 어디인지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과거 메이지유신을 이끈 산업화 시설이었을지 모르지만 현재 일본인들에게는 별다른 의미를 주지 못하는 셈이다.
나가사키·기타큐슈=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 “아베노믹스 홍보 위해 산업유적을 문화유산 후보로 결정” ▼
아베 지역구내 5곳 포함돼 논란
일본 정부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경제 업적을 극대화하기 위해 세계문화유산 후보로 규슈(九州)와 야마구치(山口) 현의 28개 산업혁명 유적지를 결정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일본 정부 내에서 세계문화유산 후보 추천은 문부과학성 산하 자문기관인 문화심의회가 주도해 왔다. 문화심의회는 올해 8월 ‘나가사키(長崎) 시의 교회군과 기독교 관련 유산’을 세계문화유산 후보로 결정했다. 지난달 2일 기자가 나가사키 시를 방문했을 때 ‘기독교 유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라고 쓴 플래카드가 시내 곳곳에 붙어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총리실 산하 내각관방도 문화유산을 추천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내각관방 아래에 있는 전문가회의는 산업혁명 유적지 28개를 후보로 결정했다.
결국 두 개 후보지가 맞붙은 결과 올해 9월 산업혁명 유적지가 승자로 결정이 됐다. 그러자 일본 언론에선 아베 총리가 자신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과거의 산업시설을 문화유산으로 결정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야마구치 현이 아베 총리의 지역구인 점도 구설에 올랐다. 28개 산업혁명 유적지 중 야마구치 현에는 5개 유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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