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은 B형이 지난해보다 전반적으로 어려웠다. A형은 지난해와 비슷하지만 체감 난도가 만만치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수능을 쉬운 A형과 기존 수준의 B형으로 이원화하겠다던 교육 당국의 구상은 결국 계열별 수능으로 변질됐다.
이에 따라 수험생이 유일하게 자신의 실력을 감안해 A, B형을 고른 영어가 입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됐다. 특히 어렵게 출제된 영어 B형은 상위권 수험생들이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충족할 수 있을지에 결정적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입시 전문가들은 이번 수능에서 수학과 영어 과목의 변별력이 특히 높아 중상위권 이상의 입시 결과에 최대 변수가 될 것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A, B형에 각기 응시한 수험생 집단의 실력을 사전에 파악할 수 없어 전문가들조차 등급의 구분점수나 표준점수 분포를 예측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로 입시기관이 내놓은 분석 결과는 제각각인 데다 수시로 바뀌었다. 입시학원 관계자는 “매년 가채점 결과를 토대로 예상 점수나 등급을 자신 있게 발표했지만 올해는 솔직히 내놓고 싶지 않은 심정이다. 실제 입시 결과를 얼마나 맞힐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면서 “수험생의 선택 유형도 너무 여러 가지라서 배치표를 여러 형식으로 만들었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 국어
주로 이과생이 보는 A형과 문과생이 보는 B형 모두 지난해보다 어려웠다는 평가가 나왔다. 지난해 언어영역은 만점자가 전체 수험생의 2.36%로 매우 쉬웠다. 9월 모의평가와 비교하면 이번에는 A형이 비슷하고 B형이 다소 어려웠다는 반응이 나온다. 9월 모의평가의 만점자 비율은 A형이 0.58%, B형이 0.86%. 올해 B형 만점자 비율은 0.5% 수준까지 떨어질 거란 예측도 나왔다.
진학사 김희동 입시전략연구소장은 “다만 상위권 응시자가 B형에 대거 몰려 1등급과 2등급을 나누는 구분점수는 크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이사는 “A형도 의학계열에 진학하려는 수험생 등 자연계 최상위권 학생의 변별력을 가리기 위해 쉽게 출제하진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A, B형 모두 어려운 문제는 EBS와 연계되지 않거나 크게 변형된 것들이었다. 수험생의 체감 난도가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인봉 서울 잠실여고 교사는 “선택형이 처음 도입된 만큼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해 문제 유형 자체는 특별한 게 없었지만 EBS 연계 부분에서 어려움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 수학
지난해 수리영역에서 만점자 비율은 이과생이 주로 치른 ‘가’형에서 0.76%, 문과생이 주로 본 ‘나’형에서 0.98%였다. 난도 조절이 전반적으로 적정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지난해 난도 조절이 잘됐던 만큼 올해도 최대한 이 수준에 맞추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현장 교사들은 수학 A형은 평가원 의도대로 지난해 ‘나’형과 비슷했지만 B형은 ‘가’형보다 어려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금수 서울 중앙대사범대부속고 교사는 “B형은 EBS 체감 연계율이 떨어져 점수가 내려갈 수 있다”고 평가했다.
9월 모의평가와 비교해도 B형 점수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보 정보학원 원장은 “B형 1등급 구분점수가 90점 내외로 예상된다. 만점자 비율도 0.5% 내외로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B형에서 1, 2등급을 받아 온 재수생 김모 씨는 “9월은 물론이고 지난해보다 어렵게 느껴졌다. 시간도 빠듯했다”고 말했다.
다만 9월에는 A형 표준점수 최고점이 B형보다 11점이나 높았다. B형 상위권을 변별하기 위해 낸 몇몇 어려운 문항을 수험생이 의외로 쉽게 풀어내서다.
○ 영어
국어, 수학에 비해 A, B형 난도 차가 뚜렷했다. A형은 9월 모의평가와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B형은 다소 어렵게 출제된 9월보다 어려웠다. 난도 기준을 B형 10으로 했을 때 국어, 수학 A형이 8∼9 정도라면 영어 A형은 6∼7 수준이다.
수험생은 B형이 대부분 지문 자체가 어려웠다는 반응을 보였다. 6, 9월 모의평가 영어에서 모두 1등급을 받은 신지현 양(서울 진선여고)은 “EBS 연계 문제란 건 알겠는데 전문적인 분야의 지문이 많아 힘들었다. 지문 자체도 길었다”고 말했다. 김은지 양(서울 경기여고)도 “보통 시간이 많이 걸리는 빈칸 추론 문제가 3점짜리에 몰려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입시 전문가들은 변별력 확보 차원에서 B형을 어렵게 출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해석을 내렸다. 오종운 이투스청솔 평가이사는 “상위권 학생이 몰린 B형에서 문제가 쉬우면 한두 문제로 등급이 갈릴 수 있다. 평가원이 현장 혼란과 ‘로또 수능’이란 비난을 잠재우기 위해 B형 난도 올리기란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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