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1시 40분 청와대. 빨간 재킷 차림의 박근혜 대통령이 환한 미소로 방한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맞았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두 정상과 달리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의전 담당자들의 얼굴에는 난처한 표정이 스쳤다. 푸틴 대통령의 도착이 예정된 시간보다 40분이나 지연되는 바람에 이후 공식 일정들이 줄줄이 밀리게 됐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이 길어지면서 오후 3시 반에야 시작된 확대정상회담은 10분 만에 후다닥 끝나버렸다. 박 대통령이 모두발언에서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됐고 여러분께서도 시장하실 것 같다”며 확대회담을 오찬과 함께 하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그러나 양국 정부 관계자 외에 학계 언론계 인사들까지 80여 명이 참석한 오찬은 당초 예정보다 1시간 15분이나 늦은 오후 4시 반이 넘어서야 시작됐다. 6시까지 이어진 이 ‘점심식사’에 대해 정부 안팎에서는 “(이게) 어떻게 오찬이냐. 만찬이지”라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오전 3시경 인천공항에 도착해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공식 일정에 나섰다. 당초 12일 저녁에 한국에 들어와 1박 2일간의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었으나 직전 방문국인 베트남에서의 만찬 등 때문에 13일 새벽에 오는 것으로 막판에 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과정에서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동상 제막식과 대한삼보연맹의 환영행사 등 예정됐던 행사의 진행 시간을 일일이 재조정하느라 양국 관계자들이 진땀을 뺐다는 후문이다.
주요국 정상이 멀리 떨어진 외국을 공식 방문하면서 당일치기로 일정을 강행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런 푸틴 대통령의 행보를 놓고 “외교적 결례”라는 지적이 서울 외교가에서 나왔다. 러시아 측이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국말이 서툰 통역관에게 통역을 맡긴 것도 구설수에 올랐다. 박 대통령은 통역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표정을 여러 차례 보였다.
청와대 고위당국자는 “푸틴 대통령이 워낙 바쁘고 굉장히 실용적인 분”이라며 “정상회담 내용이 깊어지니 (예정보다) 길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다른 정부 관계자는 “러시아 대통령이 한국에 오면서 ‘무박 1일’로 일정을 잡고 정상회담에까지 늦은 것은 쉽게 납득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은 9월 러시아에서 열린 한-러 정상회담에서도 박 대통령을 1시간 동안 기다리게 한 ‘지각 전력’이 있다.
서둘러 오찬을 끝낸 푸틴 대통령은 세계태권도연맹으로부터 태권도 명예 9단증을 전달받았다. 이어 양국 민관 포럼인 ‘한-러 대화’ 폐막식과 인천에서 열린 ‘바랴크함(러일전쟁 때 침몰한 러시아 배) 추모비 참배 행사’까지 서둘러 진행하고 이날 저녁 늦게 귀국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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