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극장가는 그야말로 ‘친구’ 때문에 난리가 났다. 사람들은 ‘친구’를 보기 위해 줄을 서서 표를 구매했고 한때 잘 나간다는 고교생들은 청소년 관람불가인 이 영화를 보려고 안달이 났다. 정장을 입거나 화장을 한 학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전국 관객 820만이라는 기록적인 흥행신화를 쓴 ‘친구’는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팬들에게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2013년 ‘친구2’가 12년의 세월을 건너 탄생했다. 동수(장동건)를 죽이고 17년 간 감옥살이를 한 준석(유오성)이 출소하며 동수의 아들 성훈(김우빈)과 만나 벌어지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친구’에 이어 ‘친구2’까지 메가폰을 잡은 곽경택 감독의 부담감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 이유는 ‘친구2’의 경쟁작이 다름 아닌 ‘친구’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으쌰으쌰’하고 시작했죠. 완성에 가까워질수록 ‘친구’가 무서워지더라고요. 12년 동안 끊임없이 사랑을 받았거든요. 내 새끼지만 정말 무서운 새끼가 돼버렸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친구1’은 제 삶 속의 경험에 기반을 둔 작품이고 ‘친구2’는 그 전작을 기반으로 만든 영화잖아요. 게다가 ‘친구’는 하나의 현상이 됐고 ‘친구2’는 영화일 뿐이에요. 영화가 현상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인정할 건 인정해야죠.”
‘친구’가 까까머리의 교복을 입고 부산시내를 뛰어다닌 부산사나이들의 우정을 그린 영화라면, ‘친구2’는 이제는 아버지뻘이 된 조직폭력배 두목 준석과 자식 같은 친구의 아들 성훈, 준석의 아버지인 이철주까지, 세대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그렸다. 왜 곽 감독은 ‘친구’라는 제목으로 우정 아닌 세대 간의 이야기를 그렸을까.
“아버지가 여든 살이 되시고 저 역시 중년의 사회인이고 제 아들은 이제 막 사회 초년병이 됐어요. 나이를 먹다보니 세대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들어와요. 그러다보니 준석의 아버지인 이철주(주진모) 분량이 들어갔죠. 물론 준석이와 성훈이가 혈연은 아니죠. 하지만 40대인 준석이는 삶의 유전자를 남기고 싶어 하는, 즉 후계자를 찾고 싶어 해요. 게다가 20대인 성훈이는 성장기에 받지 못한 아버지로부터 정을 준석이에게 받고 싶어 하죠. 서로의 정을 나누는 이런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느와르는 정말 포장일 뿐이고 속 이야기는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친구2’는 곽 감독과 유오성에게 의미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동갑내기로 지냈던 두 사람은 ‘챔피언’(2002)이후 영화 수익 분배 등 문제가 생겼고 소송까지 갔다. 10년간 만나지 않았던 두 사람은 ‘친구2’로 화해했다.
“이제는 (유)오성이와 편한 관계가 됐어요. 몇 번의 술자리에서 ‘네가 없으면 안 되겠다’라고 말하며 작품을 같이 하자고 했어요. 그렇게 화해의 악수를 내밀었어요. 하지만 가장 마음이 누그러진 곳은 현장이에요. 현장은 연출자와 연기자가 서로 신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거든요. 그러다보니 안 좋은 것은 사라지고 서로를 믿게 됐어요.”
곽 감독은 “유오성과의 재회도 좋지만, ‘친구’에서 만났던 동료들을 다시 만나 더 좋았다. 12년 동안 외국에 나가있다가 다시 돌아와서 옛 친구를 만난 기분이랄까?”라며 “오랜만에 (장)동건이와도 ‘고맙다’는 문자를 서로 주고받았다”고 말했다.
‘친구2’를 비롯해 그동안 곽 감독의 전작을 훑어보면 공통점이 있다. 바로 소외계층의 삶을 다룬 이야기들이 많다는 것이다. ‘미운오리새끼’(2012) ‘통증’(2011) ‘사랑’(2007) ‘똥개’(2003) 등 마이너들의 인생을 깊게 파헤친 그린 작품이 많았다. 유독 그 이야기가 끌리는 이유가 있었는지 궁금했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류와 대담을 한 적이 있어요. 제가 무라카미 류에게 ‘대부분의 작품이 소외된 자들의 이야기다. 왜 그 쪽에 집착하나’라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넌 나보다 더하다. 네 작품이 다 그렇던데?‘라는 답이 돌아오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그들에게 뭔가 느껴져서 그랬던 것 같아요. 어릴 때 생일 파티를 하면 집안 형편이 좋지 않은 친구들만 데리고 갔던 기억이 나요. 그냥 보살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잘 사는 애들은 맛있는 음식 매일 먹을 텐데요. 뭘. 하하.“
곽경택 감독은 앞으로 만들고 싶은 작품이 수두룩하다. 그는 “하고 싶은 게 많아서 미치겠다”라며 껄껄껄 웃었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이야기가 몇 개 있어요. 중년의 이야기도 있고, 남자들의 액션 이야기도 있고, 형사물도 하나 생각한 게 있어요. ‘친구2’가 좋은 결과가 있으면 또 곧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목표요? 흥행은 안 좋아도 내 배우들이 연기 못했다는 말은 안 들었으면 좋겠어요. 정말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사진|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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