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책 vs 책]현대사의 신화가 입 열고… 민주화 전설이 말 걸다

◇조국의 하늘을 날다/김신 지음/339쪽·2만2000원/돌베개
◇김지하와 그의 시대/허문명 지음/504쪽·1만8500원/블루엘리펀트

백범 김구(1876∼1949)가 우리 현대사의 신화라면 시인 김지하는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 신화가 입을 열고 전설이 말을 걸어오는 듯한 느낌의 책 두 권이 나란히 출간됐다. 백범의 둘째 아들 김신 장군(91)의 회고록 ‘조국의 하늘을 날다’와 100시간 넘는 김지하와의 대화를 토대로 올해 동아일보에 111회에 걸쳐 연재된 글을 엮은 ‘김지하와 그의 시대’다.

사람들은 백범을 이승만 시대에 저항하다 비극적 최후를 맞은 민족혼의 화신으로 여긴다. 또 김지하를 5·16으로 시작된 군부독재에 맞선 저항의 아이콘으로 여긴다. 하지만 백범의 아들 김신과 김지하가 회고하는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핍박과 오욕의 역사가 아니다. 비극적 현실 속에서도 저마다 최선의 삶을 살기 위해 몸부림친 눈물겹고 가슴 벅찬 역사였다.

김신 장군은 이승만의 단독정부에 반대한 아버지와 함께 38선을 넘었고 결국 이승만 추종세력의 흉탄에 아버지를 잃었지만 결코 대한민국을 버리지 않았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미국에서 전투기 조종사 자격을 딴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전투기를 몰고 인민군, 중공군과 싸웠다. 중국 본토에 침입해 소련의 미그 15기를 탈취하려는 미군 비밀작전에도 참여했다.

오늘날 민족주의 좌파 세력이 ‘일본군 장교 출신 다카키 마사오’라고 조롱하는 박정희가 5·16군사정변을 일으켰을 때는 공군참모총장이었지만 “서울 시내가 불바다가 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면서 쿠데타군 진압 요청을 거부했다. 군복을 벗은 뒤에는 대만 주재 대사로 8년을 봉직했고 귀국한 뒤에는 공화당 후보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그만큼 그는 주어진 현실 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1948년 백범이 38선을 넘은 것을 후대인들이 ‘순진한 이상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할까. “아버지를 비롯한 임시정부 선열들은 자신들의 투쟁이 성공을 거두리라 기대하며 싸우지 않았다. 목숨 걸고 투쟁하는 그 길밖에 없었기에 좌고우면하지 않고 전진해야만 했다. … 해방된 조국에서 민족이 갈라져 동족상잔의 암운까지 드리워졌으니 아버지의 참담한 심정은 헤아릴 길 없이 깊었다. … 아버지는 마땅히 나서야 하는 길을 나섰다.”

그렇다. 백범은 무슨 대단한 사상이 있어서거나 심모원려의 계산이 있어서 통일정부 수립을 주장한 게 아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자신의 삶의 원칙을 끝까지 관철한 것이다.

백범과 김신이 우직한 무인(武人) 스타일의 삶을 살았다면 ‘타는 목마름으로’의 시인 김지하는 예민한 예인(藝人) 스타일로 시대와 운명을 마주했다. 4·19세대와 6·3세대 사이에 가랑잎처럼 끼어있던 그가 민주화세력의 아이콘이 됐던 것은 그가 시대적 격변 속에 끊임없이 흔들리면서도 민심의 방향을 가늠해주는 나침반 바늘과 같은 영혼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시인이라기보다 무당이나 광대에 가깝다. 1960, 70년대 군부독재가 극으로 치달았을 때 그는 그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신기 넘치는 굿판을 펼쳤다. 4·19로 잉태된 민주화의 싹을 5·16으로 물꼬를 튼 산업화의 텃밭 속에 꽃피워 달라는 열망을 담은 굿판이었다. ‘민족적 민주주의의 장례식 조사’(1964년)와 ‘오적’(1970년), ‘타는 목마름으로’(1975년)가 그 비나리였다. 하지만 1990년대 그 바늘의 향방이 바뀌었음에도 과거의 사슬에 묶인 동어반복의 굿판이 요구되자 김지하는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고 일갈했던 것 아니었을까.

‘김지하와 그의 시대’는 바로 그의 굿판에 신기가 가득했던 1960∼1979년의 시대상을 담아냈다. 책의 프로타고니스트는 김지하이지만 그 대척점에 선 안타고니스트로서 박정희뿐 아니라 조영래 변호사, 김수환 추기경, 소설 속 호스티스 영자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물을 담아냈다. 김지하라는 나침반을 끊임없이 요동치게 만든 시대정신을 꿰뚫기 위함이다.

두 권의 책을 함께 통독하다 보면 우리 근현대사를 둘러싼 이념의 안개 너머 오롯하게 서있는 인생의 봉우리가 보일 법도 하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