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2일 서유럽 순방 출국 직전 수행원으로 갈 예정이었던 조인근 대통령 연설기록비서관을 국내에 남도록 했다. 국회 시정연설을 쓰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2주 넘게 시정연설을 준비한 셈이다. 박 대통령은 몇 차례 연설문을 통째로 갈아엎으며 본인의 4대 국정기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공을 들였다고 한다. 30분 연설 중 25분을 4대 국정기조를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연설문 최종본은 18일 0시까지 대통령이 직접 문구를 손봤다.
박 대통령은 새로운 국정 비전이나 과제를 던지지는 않았다. 다만 비정상의 정상화에 강한 의지를 나타내며 특히 강한 공공부문 개혁을 예고했다.
○ “공공부문부터 솔선해 개혁하겠다”
박 대통령은 “지금 우리는 변화의 속도가 국가의 흥망을 좌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정부는 지난 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제도를 정상화시키는 데 역점을 두고 새로운 변화와 도전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원전과 방위사업, 철도시설, 문화재 분야 등을 열거한 뒤 “각 분야의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비리들을 반드시 척결하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 부분을 언급하며 한 단어별로 딱딱 끊어서 힘을 주어 말하는 식으로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열거한 분야의 특징은 일부 전문가집단이 카르텔을 형성해 담합하며 각종 비리를 저지르는 것”이라며 “이들의 기득권을 과감히 깨부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공공부문부터 솔선해 개혁에 나서겠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과 예산 낭비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히 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공공기관 임직원들의 연봉과 성과급, 복지수준 기준, 공공기관에 대한 평가 요건 등을 강화하는 등 강도 높은 개선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다른 관계자는 “이 부분은 박 대통령이 강조하기 위해 4대 국정기조와 별도로 배치한 것”이라며 “정치권에 협조를 당부하기 전 우리 정부가 할 일을 대표적으로 언급한 이 부분은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언론에서 지적한 사례와 별도로 ‘비정상의 정상화’ 대상 리스트 작업을 계속 진행 중이다. 지난달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은행권의 구속성 예금(일명 ‘꺾기’)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내용도 청와대가 작성한 비정상의 정상화 리스트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 4대 국정기조 중심으로 연설문 작성
박 대통령은 시정연설의 골격을 4대 국정기조(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 평화통일) 중심으로 짰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임기 초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로 국정기조를 중심으로 연설문을 쓴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앞으로 5년 동안 매년 하게 될 시정연설의 골격과 내용도 올해 연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국민행복을 강조하면서 첫 번째로 기초연금제도 도입을 언급했다. 박 대통령은 “정부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어르신들의 생활 안정과 국민들의 노후 안정을 위해 내년 7월 기초연금제도 도입을 목표로 예산 5조2000억 원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공약 수정으로 여러 번 사과를 표시했던 것을 염두에 둔 듯 “어려운 경제여건으로 불가피하게 해결하지 못한 부분은 경제를 활성화시켜 지켜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약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4대악(성폭력·가정폭력·학교폭력·불량식품) 근절과 관련해 “성폭력 재범률과 가정폭력 재범률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등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4대악 근절 예산을 올해보다 6.6% 늘렸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통일의 길은 아직은 어렵고 멀게 보이지만 우리가 꼭 가야 할 길”이라며 “반드시 임기 중에 평화통일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다만 “개성공단이 다시 문을 열었지만 공단 정상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3통(통행·통신·통관)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공단의 실질적인 정상화, 개성공단의 국제화도 아직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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