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23일 동중국해 일대에 ‘방공식별구역(ADIZ)’을 선포함에 따라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과의 갈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역사 및 집단자위권 문제 등에서 일본에 대항해 중국과 공동 보조를 취해온 한국이 중국과 영토 관련 분쟁에 말려들 수도 있는 상황이 발생함에 따라 외교적으로 당혹스러운 처지에 빠질 소지가 적지 않다. 중국이 선포한 방공식별구역은 제주 서쪽의 한국 측 방공식별구역(KADIZ)과 남북 20km, 동서 115km가량 겹치며 이와 별도로 일본의 방공식별구역인 이어도 상공도 포함하고 있다. ○ 이어도 상공 항공기 중-일에 모두 통보해야 하나?
중국의 이번 조치는 직접적으로는 일본과 미국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국이 군사 굴기(굴起)를 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방공식별구역 선포는 이 일대 해상에 대한 영토 야욕을 드러낸 사례로도 풀이할 수 있다.
실제로 류츠구이(劉賜貴) 중국 국가해양국장(장관급)은 지난해 3월 “관할 해역에 대한 정기 순찰 대상에 이어도가 포함된다”고 말했다. 중국 관용기의 이어도 주변 출몰은 2010년 2건, 2011년 7건에 이어 지난해에는 14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1951년 미군이 설정한 한국의 방공식별구역(KADIZ)에는 이어도가 빠져 있다. 반면 일본의 방공식별구역(JADIZ)에는 이어도가 포함돼 있다. 이에 따라 지금도 이어도 인근에 한국 공군기가 출격하거나 연구원들이 헬기로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를 방문할 때엔 일본에 비행 계획을 통보해야 한다. 중국이 별도로 설정한 방공식별구역에도 이어도가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이젠 일본과 중국 양측에 통보한 뒤에야 해당 지역에 갈 수 있는 처지가 될 수도 있다. 이는 향후 한중 간에 새로운 마찰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게다가 중국은 23일 남중국해 이외의 해상 상공에도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한국과 인접한 서해에도 방공식별구역을 추가로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도는 물론이고 서해상에서도 북한을 정찰하는 한국군의 작전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한국 국방부는 방공식별구역이 국제법상 효력이 없는 만큼 중국이 설정한 방공식별구역을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이해당사국 간 협의를 통해 문제를 풀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방공식별구역은 상대국이 인정하지 않으면 효력이 없기 때문에 면적이 겹치는 부분에 대해 협의로 조정이 가능하다는 근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다만, 한국 국방부 관계자는 “한중 간에는 2009년 해·공군 직통전화가 설치돼 있고 매일 몇 차례 통신을 하고 있다”며 “방공식별구역 설정에 따른 문제는 크지 않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문제는 방공식별구역이 ‘준(準)영공’으로 인식된다는 점에서 구역 설정 자체가 향후 한중 간 배타적경제구역(EEZ) 획정 논의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는 것. 한국은 ‘중간선 원칙’을 적용해 이어도를 한국 관할권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왔지만 중국은 자국의 대륙붕이 이어도까지 미쳐 있으며 해안선의 길이와 인구도 고려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어 앞으로 지속적인 갈등의 소지로 작용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 중미일 군사충돌 가능성 고조
중국의 이번 조치는 이달 12일 막을 내린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3중전회)에서 결정한 범정부 기구인 ‘국가안전위원회’ 설립 발표 후 시행됐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중국은 그동안 방공식별구역 대신 공역이라는 개념을 운용해 외국 군용기의 접근을 통제해왔다. 그러면서도 일본의 방공식별구역이 저장(浙江) 성에서 130km 지점까지 뻗어 있다며 불만을 제기해 왔다. 이번에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를 포함해 미군 기지가 있는 오키나와 서쪽까지 방공식별구역에 포함시킴으로써 이 일대에 대한 제공권 확립의 근거를 마련한 셈이다.
양국의 방공식별구역이 상당 부분 겹치기 때문에 해당 지역에 서로 항공기를 출격시키는 군사적 위협 수위도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9월에도 무인항공기를 센카쿠 인근에 발진시켰고 일본 자위대 전투기들이 긴급 발진했다. 일본이 중국 무인기를 격추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함에 따라 양측 간 마찰은 일상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베이징(北京)의 한 군사 전문가는 “중국과 일본의 해·공군 간에는 핫라인도 없기 때문에 군사적 충돌 위험이 높다”고 말했다. 미군 정찰기의 활동을 둘러싼 미중 갈등도 고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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