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나아갈 길 비춘 ‘커다란 등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5일 03시 00분


박영식 선생님 영전에

선생님, 이 무슨 슬프고 충격적인 소식입니까? 늘 밝게 웃으시며 담소를 즐기시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이렇게 홀연히 가시다니요. 저희들을 인도하던 커다란 등대 하나가 갑자기 꺼진 듯합니다. 이제 누구와 학문과 사상의 진보를 논하며 누구에게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을 물어야 합니까.

선생님께서는 교육자로서, 철학자로서, 사회운동가로서 일인삼역을 탁월하게 수행한 전인적 인격이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오랫동안 연세대 철학교수로서 수많은 후학을 길러냈으며 연세대 총장, 광운대 총장, 학술원 회장 등을 역임하시면서 먼 미래를 내다보는 비전을 갖고 우리나라의 학문발전과 진흥을 위해 헌신하신 진정한 교육자이셨습니다.

교육부 장관 시절에는 교육개혁안을 시행하면서 대학의 민주화와 선진화를 위한 초석을 놓았으며 우리 사회의 교육제도 전반을 시대적 요구에 맞게 새롭게 다듬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존경받는 교육자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의 선구적 철학자이며 통섭의 인문학자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나라 분석철학의 1세대로서 강의와 저술을 통해 학계의 발전을 이끌었으며 경험과 논리를 중시하는 분석철학의 정신을 확산하는 데 공헌하셨습니다. “철학은 사람의 눈을 날로 새롭게 뜨게 하고 인간을 온갖 어둠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는 선생님의 통찰은 유난히 큰 가르침으로 다가옵니다.

또 선생님께서는 사회를 밝히는 시민운동과 사회의 어두운 곳을 보듬는 복지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온 열성적인 사회운동가이셨습니다. 아마도 이론과 실천을 이렇게 겸비한 분을 우리 사회에서 다시 찾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시대의 행동하는 지성이었고 시대정신이었습니다. 공인은 책임감으로 일관해야 하며 지도자는 문학적 상상력과 역사적 해석력과 철학적 비판력을 함께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평소의 주장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언제나 새벽 다섯 시면 일어나 연구를 시작하셨고 그 어떤 강의든 연구실에서 리허설을 하고 강의실에 들어갔다는 일화는 이제 전설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 뵈었을 때 “이 선생, 나는 여기까지인 것 같아. 우리 사회와 철학계를 위해서 더 많은 일을 해주세요”라고 하신 말씀이 마지막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선생님께서 남기신 그 치열했던 삶의 가르침은 저희들 가슴에서 가슴으로 영원히 계승될 것입니다. 선생님,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고 편히 영면하소서.

이한구 경희대 석좌교수(전 한국철학회장)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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