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에서 호랑이가 우리를 벗어나 사육사를 물어 중태에 빠지게 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호랑이가 관람객들이 다니는 곳까지 나왔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만큼 대공원 측의 부실한 안전관리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서울시와 대공원, 과천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10분경 여우사에서 3년생 수컷 시베리아호랑이 ‘로스토프’가 우리 밖으로 나와 사육사 심모 씨(52)를 관리자 통로에서 공격해 목을 물었다.
심 씨는 목덜미 부근 대동맥을 다치고 목뼈가 부러져 부근 평촌 한림대병원으로 옮겼다가 수원 아주대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의식이 없는 상태다. 로스토프는 2011년 한-러 수교 20주년을 맞이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선물한 시베리아호랑이 한 쌍 중 수컷. 서울대공원은 호랑이숲 리모델링 공사 때문에 올해 4월부터 호랑이를 여우사에서 임시로 거처하게 했다.
오전 10시 20분경 우연히 이곳을 지나던 매점 주인이 심 씨와 호랑이를 발견해 대공원 측에 신고했다. 이후 과천소방서, 과천경찰서, 대공원 관계자들과 대치하던 호랑이는 10시 38분 스스로 우리 안으로 들어갔고 사육사들이 문을 잠가 상황이 종료됐다.
이 사건으로 여우사 주변 관람객들이 급히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대공원 관계자들을 상대로 사고 경위와 과실 여부, 안전수칙 준수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가장 큰 의문은 호랑이가 우리 밖으로 나온 과정이다. 대공원 측의 설명에 따르면 청소하거나 먹이를 줄 때는 우리 안에 별도로 마련된 격리 공간인 내실로 유도해 호랑이를 잠시 가둬놓는다. 이후 사육사가 우리 안으로 들어간다. 이달주 서울대공원 동물복지과장은 “내실과 연결된 문은 외부에서 수동으로 개폐할 수 있는데 문이 잠겼는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호랑이가 내실에서 우리로 나오는 것을 발견한 사육사가 도망치다가 우리에서 관리자 통로로 나가는 문을 미처 잠그지 못해 쫓아온 호랑이에게 통로에서 목을 물린 것 같다”고 말했다.
대공원 측은 “호랑이가 우리 밖 관리자 통로까지만 나왔고 외부로 나간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관리자 통로와 외부에 가로놓인 펜스의 높이는 어른 키보다 낮은 1.5m에 불과해 호랑이가 펜스를 뛰어넘었더라면 직접 관람객들과 마주치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우선 맹수인 호랑이를 보호시설이 허술한 여우사에 임시로 머물게 하면서도 추가로 안전을 확보하는 장치를 했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기존 호랑이사의 경우 탈출을 막기 위해 이중문, 겹으로 둘러싼 펜스, 강화유리 등을 갖추고 있다. 이에 대공원 측은 “호랑이를 임시 보호하면서 여우사에 철제 펜스를 설치하는 등 시설물을 보강했다”고 말했다.
만일을 대비해 2인 1조로 행동해야 한다는 안전수칙도 지켜지지 않았다. 사고를 당한 심 씨는 동료 사육사 최모 씨와 함께 여우사로 향했지만 최 씨는 도중 퓨마가 전시돼 있는 인근 사육장으로 이동했다. 사육사 심 씨는 1987년 서울대공원에 입사해 25년간 곤충관에서 근무하다 올해 1월 맹수사로 자리를 옮겨 맹수 관리에는 초보나 마찬가지였다.
한편 대공원 측은 이날 오후에도 로스토프를 평소와 다름없이 일반에 공개해 “사람을 공격한 호랑이를 곧바로 공개해도 되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대공원에선 2004년, 2010년에 각각 늑대 ‘늑돌이’와 말레이곰 ‘꼬마’가 탈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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