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가수 에일리 누드사진 유포, 유명 연예인들의 불법 스포츠 도박 사건을 보도한 기사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유독 이런 식의 댓글이 많이 달렸다. 이 스캔들은 결국 정부가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주장이다. 같은 날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검찰에서 성접대 무혐의 처분을 받은 일이 댓글 작성을 부추긴 격이었다.
‘연예계 스캔들=정부의 음모’ 공식은 근거와 설득력이 빈약하다. ‘국가정보원 댓글사건’을 조사한 임병숙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경찰 생활 하면서 그런 일을 하라는 지시는 받아본 적이 없다. 아무리 연예인 권력시대라고 하지만 그들의 사생활까지 신경 쓸 만큼 한가하지 않다”고 말했다. 20년 이상 연예계에 종사한 기획사 관계자 역시 “소문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근거가 부족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누구나 인터넷에 접근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 인구가 급증하면서 정부 음모론의 파급력과 위험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왜 연예계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그 배후로 정부를 의심할까? 동아일보는 인터넷이나 자신의 SNS에 정부 음모론을 올린 경험이 있는 두 명에게 이유를 물어봤다. 또 정신건강 전문의에게 심리감정도 의뢰했다.
○ 자기 입맛 맞게 현상·정보 왜곡
취업준비생 A 씨(25·여)는 11일 자신의 블로그에 ‘연예계 도박 사건은 정부의 물타기’라고 올렸다. 그는 이날 뉴스를 보면서 “머릿속에서 피가 거꾸로 치솟는 느낌이었다”고 털어놨다. 이 스캔들로 정작 중요한 김학의 무혐의 소식이 대중의 관심권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야권 성향이라는 A 씨는 자신의 의심이 “합리적”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새누리당 정권이 국민을 기망한 게 한두 번인가. 구체적 증거는 부족하지만 충분히 일어날 만한 상황에 대한 의혹 제기”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동청 서울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모든 정보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가공해 기억하는 ‘강화’ 효과로 비롯됐다”고 진단했다. 야당 지지자인 A 씨가 현실정치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고, 선호하는 형태로 왜곡해 해석하다 보니 정부 음모론의 근거가 부족한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A 씨가 일종의 ‘파워 콤플렉스’를 앓고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이동수 성균관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자신의 열등감이 타인에 대한 지나친 의심과 시기심의 원인이다. 마음에 안 드는 박근혜 정부가 지닌 권력에 두려움을 가지다 보니 우군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부 음모론을 퍼뜨리고 다닐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 주목받고 싶은 인간의 본능
서울 소재 모 대학 경영학과 3학년인 B 씨(23)는 11일 친구들과 공유하는 카카오톡 단체방에 ‘정부가 사건을 모아뒀다가 일부러 한꺼번에 터뜨렸다’는 메시지를 올렸다. 이유를 묻자 그는 “남들이 모르는 이야기를 하니까 다들 놀라고 내 말에 집중하더라. 대화를 주도할 수 있는 그 느낌 자체가 정말 좋았다”고 답했다.
정 교수는 B 씨의 행위를 두고 “주변의 관심을 끌고 싶어 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라고 지적했다. 또 인간이라면 누구나 비밀스러운 음모론에 매혹되는 게 당연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특히 이 교수는 “B 씨가 자칫 음모론 유포에 재미를 붙이는 일이 심해지면 과대망상증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음모론이 인기를 끄는 밑바탕에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심각한 불신이 깔려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우선 서강대 교수(사회학)는 “과도한 음모론은 분열과 붕괴라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한다. 투명한 정부 행정과 언론기관의 공정성 확보를 통해 국민적 신뢰를 회복해야만 근거 없는 음모론의 끊임없는 재생산을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