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제품 제조업체들에 올해는 악몽 같은 한 해였다. ‘대리점에 밀어내기 영업 파동’ ‘원유 가격 인상 이후 제품가격 동결 압박’ 등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바나나맛 우유’로 대표되는 가공 우유와 아이스크림이 주력 제품인 빙그레에는 특히 어려운 한 해였다. ‘찜통더위’가 이어지면서도 여름 석 달 중 절반 동안 비가 내려 두 제품의 판매가 신통찮았기 때문이다. 주가도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기만 했다. 하지만 최근 제품 가격 인상을 한 데다 수출 판매망 정비가 끝나면서 빙그레는 새해에 ‘빙그레’ 웃을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가격 올리고 수출 안정화
빙그레의 3분기(7∼9월) 매출액은 2536억 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3% 줄어들었다. 영업이익은 지난해보다 21.2%나 줄어든 285억 원이었다. 하지만 3분기 ‘바나나맛 우유’나 ‘요플레’ 같은 대표 상품의 국내 판매량은 오히려 5%와 6% 증가했다. 박애란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빙그레는 3분기 판매관리비용도 작년 동기 대비 6.6% 줄였다”며 “다만 12%가 오른 원유 가격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지 못한 것과 수출이 지난해보다 24%가량 줄어 타격이 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악재는 이제 대부분 끝났다는 평가가 많다. 빙그레는 10월 들어 바나나맛 우유는 8.3%, 요플레는 8.0% 가격을 올렸다. 아이스크림 가격은 최대 16.7% 비싸졌다. 여름철 날씨 탓에 부진했던 빙과류 매출도 3분기 들어서는 지난해 대비 5.6% 늘었다. 오른 가격은 그대로 실적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선경 대신증권 연구원은 “빙그레뿐만 아니라 다른 유제품 업체도 모두 가격을 올렸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저항 심리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가격 인상 효과가 내년 1분기에는 나타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부진했던 수출은 판매망 재정비가 끝나 안정을 찾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내년 월드컵 특수를 노리고 판매망 정비에 나서 브라질 판매가 잠시 중단됐던 아이스크림이 다시 판매될 수 있게 됐다. 중국의 주력 수출품 ‘바나나맛 우유’도 상하이(上海) 편의점 진열대에 오르고 있다. 이승은 BS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이 두 자녀 출산을 내년부터 점진적으로 허용하기로 하면서 현지에 수출되는 유제품 수요가 올해보다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 4분기까지는 조금 더 고생할 수도
다만 주요 수출 국가의 현지 사정이 예상 외로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우원성 키움증권 연구원은 “중국의 내수 경기가 예상보다 느리게 회복되고 있다”며 “중국 유제품 시장은 장기적으로 계속 성장하겠지만 단기적으로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릴 확률은 높지 않다”고 내다봤다. 빙그레 제품을 중국에 독점 납품하는 판매상과 얼마나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지도 관건이다.
아이스크림 판매 비중이 높은 미국과 브라질에서 혹독한 경쟁을 치러야 하는 점도 부담이다. 양일우 삼성증권 연구원은 “해외에서 빙그레의 제품은 아직 한국만큼 확고한 브랜드 파워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며 “경쟁에서 살아남고 현지 환경에 적응할 때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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