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관을 설계한 민현준 엠피아트 대표(45)는 이 터에 남아 있는 건축물들을 ‘역사적 파편’으로 부르며 “이 파편들과 공존하려면 앞뒤와 질서가 있는 건물보다는 주변과 공유되는 풍경이자 공원이어야 했다”고 말했다.
주위에 문화재 하나만 있어도 건축 설계는 많은 제약을 받는다. 그런데 이 터는 경복궁, 종친부, 국군기무사령부에 매장문화재까지 고려해야 했다. 민 대표는 섬처럼 건물군으로 이뤄진 ‘군도(群島)형 건축’으로 이 난관을 해결했다.
그래서인지 서울관은 시부모 모시고 제사 챙기며 사는 종갓집 맏며느리처럼 푸근하고 겸손하다. 종친부의 기와, 기무사의 붉은 벽돌과 조화되도록 건물 외벽에도 고령토로 특수 제작한 암키와 모양의 테라코타 패널을 붙였다. 그러나 무난함은 ‘현대’ 미술관으로서는 독이 될 수 있다. “전위적인 현대 미술품들을 전시하기엔 기가 약한 디자인”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에 민 대표는 “속으로는 기가 센 미술관”이라고 반박했다. “기존의 일률적인 관람 동선을 무시하고 관람자의 참여와 몰입을 유도하는 공간으로 구성했습니다. 일방적인 계몽보다는 관람객의 참여를 통한 자발적 이해를 유도하는 최근의 미술관 건축 경향을 반영한 것이죠.”
그는 올 2월 현대미술관에 대해 쓴 박사학위 논문에서 ‘작품으로서의 건축’과 ‘작품을 위한 건축’을 비교했다. ‘작품으로서의 건축’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이 미술관에 대해 “지역적 맥락에 조응하기보다 건물 자체를 명품화했으나 주목할 만한 작가나 작품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서울관은 ‘작품을 위한 건축’에 가까운 셈이다.
“풍경 같은 미술관이란 사회적 관계를 위한 최소한의 구조체일 뿐입니다. 서울관은 수장고에서 작품을 꺼내 전시하기보다, 작가와 관람객들을 자극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산실이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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