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11월 말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핵심 측근 2명을 공개 처형한 것은 ‘김정은식 공포정치’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많다. 김정은은 사소한 꼬투리만으로도 처형을 집행하고 주민들에게 잔혹한 집행 현장을 참관하도록 강요해 왔다. 한 대북소식통은 “공포정치가 김정은 체제를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지만 충동적인 인사와 즉흥적인 숙청은 권력층 내부의 불만도 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날의 칼’이란 의미다.
○ 공포의 일상화… 질책 후 처벌 사례 이어져
대북소식통들에 따르면 9월 중순 김정은은 미림 승마구락부 건설현장을 시찰하던 도중 마구간 타일 바닥이 당초 지시대로 시공되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담당자를 처형하라고 지시했다. 바닥 시공 담당자는 다음 날 총살됐다. 주민들의 편익과 여가 증진을 위해 만드는 승마장의 타일 때문에 사람 목숨이 사라진 것이다. 이 마구간은 러시아에서 거액을 들여 수입한 혈통 좋은 말들이 묵을 예정이었다. 또 이 공사를 책임진 전창복 후방총국장은 당시까지 공사현장을 방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임명 4개월 만에 전격 해임됐다.
김정은은 지난해 5월 만경대유희장 건설현장 방문 때 ‘도로 관리 상태가 한심하다’며 담당자들을 다그친 사실이 처음 외부에 공개됐다. 이후 각종 기관과 군부대 현지지도에서 질타가 이어졌으며 문책의 강도도 한층 강화됐다. 북한에서 최고 지도자의 공개질책이 있으면 곧바로 중앙당 조직지도부의 검열이 있은 후 관련자의 처벌로 이어지는 수순이 일반적이다. 11월 평양시내에서는 인민무력부 등에 소속된 연유(기름) 담당자들이 여성 접대부를 끼고 놀다가 적발돼 공개 총살되기도 했다.
소식통들은 김정은이 공포정치를 일상화하고 있는 이유로 외부 사조(思潮) 유입 척결을 꼽고 있다. 특히 외부 사조 유입의 주요 통로인 CD, USB 메모리 등이 자신의 권위를 흔드는 도구로 비치면서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올해 하반기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와 비슷한 외모의 여성이 등장하는 음란 CD가 주민들 사이에 유통된 것이 결정적인 촉매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불순 녹화물은 아편보다 더한 독약’이라고 규정하고 인민보안부(경찰에 해당)가 맡던 녹화물 단속을 국가안전보위부(한국의 국가정보원)로 이관하면서 녹화물 관련 처형 사례가 전역에서 빈발하고 있다. 함경남도 강화도 양강도 등에서 수십 명이 공개 처형됐고 최대 70명이 한꺼번에 숨지기도 했다. 이때 고등중학교 저학년(중학생)에 불과한 어린이도 목격을 강요당하는가 하면 교육인 줄 알고 모였다가 처형을 보고 실신하는 주민이 생겨나기도 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 즉흥적 의사결정으로 주요 보직 경질
김정은의 즉흥적 충동적인 의사결정은 주요 보직에 대한 인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북한 외교관 출신인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5일 ‘김정은 집권 2년 평가와 전망’을 주제로 열린 학술회의에서 “김정은이 기분에 치우쳐 장난처럼 군 인사를 남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소는 국정원 산하기관으로 남북, 대외분야에 특화돼 있다.
고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일의 (공식)집권(1998∼2011년) 때 군 핵심 인사인 총참모장, 인민무력부장의 평균 재임기간은 각각 5년 5개월, 6년 7개월이었지만 김정은 체제에서는 두 직책 모두 1년이 되지 않는다. 특히 총참모장은 재임기간이 7개월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지난해 7월 현영철 총참모장을 임명한 뒤 올해 5월 김격식으로 바꿨다. 이후 3개월 뒤인 8월엔 다시 이영길로 갈아 치웠다. 이영길은 올해 2월 작전국장에 임명된 인물로 6개월 만에 또 자리를 바꾼 셈이다.
고 수석연구위원은 “계급을 낮췄다가 복권시키는 경우도 많았다”며 “2인자로 부상하고 있는 최룡해 총정치국장도 차수(2012년 4월)→대장(2012년 12월)→차수(2013년 2월)를 오르내렸다”고 말했다.
가벼운 일이어도 기분이 내키지 않으면 현장에서 사람을 쫓아내기도 했다. 고 수석연구위원은 “10월 22, 23일 평양에서 열린 ‘중대장·정치지도원 대회’에서 졸았던 군 간부들을 강등시키거나 해임시켰다”며 “지방 방문 중 거리에 쓰레기가 많다는 이유로 해당 지역 시(市)당 책임비서를 현지에서 자르기도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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