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급 8명중 4명이 고교동문… 市長 “인사도 뜻대로 못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7일 03시 00분


[토요판 커버스토리]지방공무원 24시

지방의 한 우체국 창구에 지방공무원 공개경쟁임용 시험 응시원서를 우편으로 제출하려는 취업예비생들이
줄을 서 있다. 어려운 관문을 뚫은 지방공무원들 중 일부는 출신고교, 학연 등으로 뭉치기도 한다. 동아일보DB
지방의 한 우체국 창구에 지방공무원 공개경쟁임용 시험 응시원서를 우편으로 제출하려는 취업예비생들이 줄을 서 있다. 어려운 관문을 뚫은 지방공무원들 중 일부는 출신고교, 학연 등으로 뭉치기도 한다. 동아일보DB
11월 29일 저녁 ‘2013 재경 서고인 정기총회 및 송년의 밤’ 행사장. 서귀포고 2회 졸업생인 한동주 전 서귀포시장이 “‘내(우근민 제주지사)가 당선되면 네(한 시장)가 서귀포시장을 더 해라. 그러면 네가 서귀포고를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게 아니냐’라고 지사가 말했다”고 했다. 이어 “내가 와서 보니 서귀포고가 모든 인사에 밀려있다. 내가 더해야 다 제자리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도 했다. 서귀포시에서 서귀포고 출신 공무원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지만 더욱 ‘중심’에 세우겠다는 의미였다.

이 사태를 계기로 향공(鄕公) 세계를 ‘우점(優點)’하고 있는 파워 고교가 다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역별 ‘파워 고교 인맥’은 어떻게 형성돼 있을까.
중부권

100년 가까운 전통을 자랑하는 대전고는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대전 충남 관가를 휩쓸다시피 했으나 평준화 이후에는 인원이 많이 줄었다. 현재는 노병찬 대전행정부시장, 송두석 충남행정부지사, 유상수 세종시부시장, 남궁영 충남도기획실장 등 55∼58회 졸업생들이 지역을 지키고 있다.

충북도청은 그동안 청주고와 충주고 출신이 주요 고위직을 차지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운호고, 충북고, 세광고, 신흥고, 청석고 등이 도약했기 때문. 1995년 민선 시대가 열린 뒤 청주고 출신은 주병덕 전 충북도지사와 이시종 현 지사 등 2명뿐이다. 이들은 동문을 특별히 우대하진 않았다.

청주시에서는 청주고 출신인 한범덕 시장이 2010년 취임한 뒤 청주고 출신들이 약진했다. 청주시는 5명의 민선 시장 가운데 3명이 청주고 출신이었다. 그러나 한 시장은 동문 후배 L 씨가 여직원 성추행 의혹 등으로 논란을 일으켰는데도 이를 묵살했다. 결국 L 씨는 올 8월 수억 원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호남 제주권

호남 지역은 전통적으로 광주일고, 전주고 등 전통 명문 고교 출신 공무원이 강세를 보여 왔다. 그러나 고교 평준화 이후 그 위세는 주춤한 상태다. 전북의 전통 명문인 전주고 출신은 법조계와 언론계 등에 많은 반면 지역 관가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전북도 건설분야 간부공무원은 한동안 전주공고 출신이 독식하다시피 했다.

전북 군산시는 군산고 출신이 강세다. “공무원들이 인사철이 되면 군산고 출신 시장 측근이나 유력자들을 찾아다닌다”는 소문이 돌 정도다. 현재 군산시청 국장급 간부 8명 가운데 4명이 군산고 출신. 과거 군산상고 출신인 모 시장은 퇴임할 무렵 사석에서 “각종 루트를 통해 압력이 들어오는 바람에 인사조차 내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익산시는 이리고 출신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국장급 8명 가운데 이리고 출신이 4명, 시 전체 공무원 1400명 가운데 이리고 출신이 200여 명이다. 남성고 출신들은 서울의 잘나가는 동문들을 이용해 시장에게 인사 청탁을 한다는 소문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이들 고교 선배들은 인사와 비서실 등 요직 부서를 장악하고 후배들에게 가점을 주거나 끌어주는 방식으로 인맥을 넓혀 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 순천시의 경우 공무원 1300명 중 순천고 출신이 120여 명을 차지하고 있다. 과거엔 순천고의 입김이 절대적이었지만 순천 매산고 출신인 노관규 전 시장이 재임한 2006∼2011년에는 “매산고가 약진하고 순천고는 밀렸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조충훈 현 시장(서울 중대부고 출신)이 지난해 4월 취임한 뒤에는 다시 순천고 출신들을 중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광주는 1980, 90년대까지 광주고 출신 공무원들이 우세했다. 전통 명문인 광주일고 출신 간부 공무원이 많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조선대 부속고교 인맥의 부상이 두드러졌다.

제주지역은 오현고의 ‘결집력’이 두드러졌다. 2002년 제주지사 선거를 앞두고 당시 후보였던 신구범 전 제주지사가 오현고 동문 모임에서 “이번 선거는 해보나 마나다. 이길 방법이 다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제주도 공무원 사회에서 30, 40대는 제주제일고, 오현고 등 인문계 출신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반면 고위층에는 다른 고교 출신이 의외로 많다. 한림공고는 토목직, 성산수산고는 수산직에서 ‘마피아’로 불릴 정도의 견고한 틀을 형성하고 있다.
영남권

부산의 전통 명문은 경남고와 부산고. 민선 초대시장은 경남고 출신인 문정수 시장이, 다음은 부산고 출신인 고 안상영 시장이 시정을 이끌었다. 허남식 시장은 마산고 출신.

부산지역 16개 기초단체장 중 경남고 출신이 3명, 부산고 및 부산남고가 각각 2명이다. 경남고 출신으로는 동래구청장 남구청장 동구청장이 있다. 부산고 동문은 부산진구청장과 사하구청장 등이다. 부산남고 출신도 영도구청장, 강서구청장 등 2명. 부산시 본청과 사업소 공무원 4000여 명 가운데 동래고 출신이 169명으로 가장 많고 부산고(144명), 경남고 (134명) 순이다.

경남 진주시 공무원은 전통 명문인 진주고와 진주농고(진주농전→진주산업대→경남과학기술대로 개명) 출신이 양분하다 최근엔 대아고와 동명고 등 신흥 명문이 가세하면서 균형이 잡힌 모양새다. 민선 1, 2기는 진주고 출신이, 3, 4기는 진주농고 출신이 시를 이끌었다. 현 이창희 시장은 진주고, 윤상기 부시장은 진주농고를 나왔다. 전체 직원 1550여 명 가운데 대아고 출신이 150여 명에 6급(담당) 이상만 90여 명에 달한다. 시의회 의장도 대아고 출신이다. 진주고 출신은 100여 명에 6급 이상이 60여 명, 진주농고도 비슷한 인원이다. 동명고는 170여 명으로 인원이 가장 많지만 고위 간부는 적은 편.

울산은 비평준화 시절 한 해 100명 안팎을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 진학시켰던 학성고 인맥이 두껍다. 울산시 전체 직원 4569명(소방직 816명 제외) 가운데 학성고 출신은 260명, 서기관급 이상 공무원은 전체 107명 중 12명이다. 울산시의원 25명 중에는 서동욱 의장(10회) 등 6명이 학성고 출신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남구청장 후보로 거론되는 서동욱 의장과 박순환 전 시의회 의장, 김헌득 전 시의원 등이 학성고 선후배다. 김두겸 현 남구청장도 마찬가지.

김해시는 김해고 출신이 압도적이다. 전체 직원 1500여 명 가운데 210명이 김해고 동문이다. 1회 졸업생(1958년생)을 주축으로 국·과장은 7명, 담당은 30명이 넘는다. 이들은 ‘한울목민회’를 통해 연 2회 가족등반대회를 개최하는 등 유대를 다지고 있다. 김해고 출신의 한 사무관은 “다른 고교 출신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을 때는 부담스럽다. 요즘은 인사 등에서 실제로 이익을 보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전했다.

지난 지방선거 당시 춘천시장에 도전했던 한 후보는 “지역 명문고(춘천고 지칭)의 학벌 독점에 따른 폐해가 심각하다”며 “지역의 리더들이 특정 학교와 인맥으로 이뤄져 춘천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문수 경기지사는 올 6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지방엔 명문, 명소, 전통 등 구심점이 있어야 한다. 명문고를 없앤다고 지역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폈다.

정재락 raks@donga.com
지명훈·이인모 기자
#지방공무원#공개경쟁임용#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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