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정부 첫 정기국회 폐회]날선 국회… 날샌 국회… 날림 국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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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류법안 6320건중 34건 통과… 처리율 0.5% 그쳐

9월 2일 ‘민생’을 내걸고 문을 열었던 정기국회가 10일로 100일간의 회기를 마쳤다. 그러나 정기국회에서 통과된 법안은 고작 34건으로 ‘역대 최악’ ‘고비용 저효율 국회’ 등의 오명을 떨치기 어렵게 됐다.

여야는 회기 마감 하루 전날인 9일 오전까지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해 초유의 ‘입법 제로(0)’ 위기에 몰리자 부랴부랴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면피용 법안 심사’를 하고 마지막 날인 10일 본회의에서 법안을 ‘날림 처리’ 했다. 본회의에서는 결의안 3건까지 모두 37건의 안건이 처리됐는데, 고작 95분이 소요됐다. 2분 30초당 한 건씩 통과시킨 것이다.

정기국회 시작부터 여야는 지난해 대선의 ‘인저리타임’(축구에서 정규시간이 끝나고 심판 재량으로 주는 시간)에 발목이 잡혀 있었다. 국회법이 정한 정기국회 개회일인 9월 2일 민주당은 국회가 아닌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천막당사에 있었다. 여야는 정기국회 개회 이전에 심사 의결해야 하는 전년도 결산안을 처리하지 못했고 정기국회 일정 조율조차 하지 못했다. 공전이 계속되자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은 “정기국회가 불성실하고 무능력한 국회로 반복되지 않도록 회의에 불참하는 국회의원들에게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해 세비를 지급하지 않아야 한다”며 “민주당 의원들에 대한 세비를 삭감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여야가 우여곡절 끝에 의사일정에 합의한 것은 정기국회가 개회한 지 25일 만인 9월 27일. 그것도 지속적인 장외투쟁의 동력을 찾지 못한 민주당이 국회로 돌아온 덕분이었다. 9월 16일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국회 3자 회담’에서 국회 정상화의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적지 않았지만 박 대통령은 민주당의 진상 규명, 대통령 사과, 책임자 처벌, 특위 설치 등의 요구 중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의사일정 합의는 더디게 진행됐다.

국정감사와 대정부 질문, 그리고 현안 질의를 거치면서 여야는 곧장 다시 가파르게 대치했다. 국정감사에서 국가정보원뿐만 아니라 국군사이버사령부에서도 대북 심리전의 일환으로 활동을 하다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국가보훈처 등에서 실시한 안보 교육이 사실상 대선 개입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이에 대한 특검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민주당 내부에서 점점 커져 갔다. 여기에 황찬현 감사원장 임명동의안과 민주당이 제출한 황교안 법무부 장관 해임 촉구 결의안 처리를 놓고 여야는 다시 격돌했다. 새누리당이 황 감사원장 인준안을 단독 처리하면서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민주당은 지난달 세 번이나 의사일정을 보이콧했다.

정쟁에 허덕이며 정기국회를 허송세월하듯 하면서 여야 지도부는 당내 리더십에 큰 취약점을 보였다. 새누리당은 이미 7월 민주당과 특위 설치 등 국회 정상화 방안 7개안을 합의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재가’를 받지 못하면서 여야 합의는 물거품이 됐다. 정국은 더욱 꼬여만 갔다. 집권 첫해이긴 했지만 청와대를 설득하지 못하는 여당 지도부는 야당에 신뢰를 줄 수 없었다. 당내 친박(친박근혜) 중심의 강경파에 휘둘린다는 지적도 많았다.

민주당 지도부도 리더십을 확실하게 보여 주지 못했다. 지난달 의사일정을 세 번 중단할 때나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한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을 황 감사원장 인준안 처리와 연계시킨 것도 지도부의 의지가 아니었다. 당내 친노(친노무현)·초선들의 눈치를 본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여야 지도부가 양당의 강경파인 친박과 친노 세력에 끼여 샌드위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악평도 나왔다. 양당 지도부는 본회의장에서 황 감사원장 인준안과 황 법무부 장관 해임 촉구 결의안 처리 순서를 놓고 서로 먼저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다 파행을 빚기도 했다. 각기 유리한 것만 처리해 버린 뒤 본회의장을 떠나 버릴까 의심을 거두지 못한 것이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낮은지를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다.

10일 여야는 정기국회에서 생색내듯 30여 개의 법안을 처리했지만 정작 박 대통령이 일자리 창출에 필요하다고 국회 시정연설에서 역설한 외국인투자촉진법 관광진흥법과 민주당이 주거 복지 강화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 전월세 상한제법 등은 손을 대지 않았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정기국회#통과 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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