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인권과 화해의 상징’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을 추모하는 열기는 피부색도, 적국도, 우방국도 넘어섰다. 10일 새벽부터 하루 종일 폭우가 내린 가운데 요하네스버그 FNB스타디움에서 열린 만델라의 공식 추도식에는 100여 개국의 정상 등이 참여해 사상 최대 규모의 조문외교가 펼쳐졌다.
이날 요하네스버그 소웨토 지역에는 아침부터 세찬 비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이른 새벽부터 걸어서 경기장을 찾은 추모객들은 “아프리카에서 지도자가 돌아가셨을 때 비가 오는 것은 행운의 징조”라며 오히려 즐거워했다. 오전 6시부터 입장이 시작된 후 수천 명이 인종과 피부색을 넘어 함께 손뼉을 치고 노래하며 ‘무지개 나라’를 세운 건국의 아버지 만델라를 기렸다. 추모객들은 마치 월드컵 축제에 참가한 듯 국기를 온몸에 휘감거나 만델라 티셔츠를 입고 발을 구르며 춤을 추고, 부부젤라도 불어댔다. 8세 딸을 데려 온 콜레카 줄루 씨(31)는 “만델라와의 이별에 눈물을 흘리지만 이것은 슬픔이 아니라 기쁨의 눈물”이라며 “그가 우리에게 준 자유를 축하하기 위해 춤을 춘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온 추모객 엘리나 크리스틴 씨(42·여)는 “믿을 수 없도록 아름다운 광경”이라고 말했다.
이날 낮 12시(한국 시간 10일 오후 7시)에 시작된 공식 추도식은 4시간가량 진행됐다. 추도식에서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와 함께 전 세계 지도자들의 얼굴이 전광판에 비칠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가장 뜨거운 박수를 받은 것은 “아프리카 땅이 낳은 아들”이라고 소개된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었다. 만델라와 오바마는 각각 남아공과 미국에서 첫 번째 흑인 대통령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데다 오바마 대통령이 여러 차례 만델라를 자신의 멘토라고 밝혀 왔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만델라를 ‘역사의 거인’으로 칭하며 “만델라의 투쟁은 당신의 투쟁이었고 그의 승리는 당신의 승리였다”고 말했다. 그는 만델라를 마하트마 간디, 마틴 루서 킹과 비교하면서 “우리에게 행동과 이상(理想)의 힘을 가르쳐 주었으며, 법을 넘어 사람들의 ‘심장’까지 바꾼 사람”이라며 “만델라가 가르쳐준 ‘자아 성찰’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 전 미국과 아직 냉랭한 관계에 있는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과 악수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추도사에서 “무지개는 비와 태양이 어우러져 탄생하듯이, 만델라와 남아공 국민들의 고통과 영광이 무지개 국가를 탄생하게 했다”며 “만델라는 위대한 정치 지도자를 넘어 이 시대의 위대한 인류의 스승”이라고 추모했다. 이어 리위안차오(李源潮) 중국 국가부주석과 카스트로 의장도 추도사를 했다.
이날 추도식에는 미국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부부,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부부와 딸 첼시 씨도 참석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정적인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과 나란히 입장했다.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찰스 왕세자, 일본의 나루히토(德仁) 왕세자,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수반,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 등 정치적 외교적 대립관계를 뛰어넘어 지구촌 지도자들이 총출동했다. 또한 미국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와 흑인 인권 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 록그룹 U2의 보컬 보노, 할리우드 영화배우 샬리즈 시어런 등 유명인들도 다수 참석했다. 이날 추도식은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70여 개국 정상 참석)을 웃도는 사상 최대 규모로 기록됐다.
이날은 만델라가 1993년 12월 10일 프레데리크 데클레르크 전 남아공 대통령과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지 20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행사가 열린 FNB스타디움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폐막식 당시 만델라가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냈던 장소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