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 이후 상당수 기업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성과급 비중을 높이는 등 임금체계 개편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가 19일 국내 기업 106곳(대기업 46곳, 중소기업 60곳)을 대상으로 전날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에 대한 반응을 긴급 설문조사한 결과 10곳 중 4곳 이상(44.4%)은 여러 대책 가운데 임금체계 개편을 우선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기업 임금체계는 크게 기본급과 각종 수당으로 나뉜다. 임금체계를 개편한다는 것은 각종 수당 항목을 손질한다는 의미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정기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포함돼 초과근무수당, 연월차수당 등이 늘어나면 기업은 수당으로 지급하는 비용이 많게는 30%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임금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보고 있다.
임금체계 개편 외에 내년 임금을 동결하거나 인상을 억제하겠다는 응답은 9.4%, 고용 규모를 줄이거나 신규 채용을 중단한다는 비율은 6.6%였다. 어떤 대책을 추진할지 검토 중이라는 등의 ‘기타’는 21.7%였다. 기타 의견은 중소기업(30.8%)이 대기업(11.8%)보다 훨씬 많았다.
하상우 한국경영자총협회 경제조사팀장은 “대기업은 통상임금 판결에 따른 시나리오를 미리 준비한 곳이 많지만 중소기업은 정보 부족 등으로 적절한 대응책을 결정하지 못한 것 같다”고 풀이했다.
통상임금 판결을 앞두고 미리 임금체계 개편 등 사전 조치를 끝낸 기업들은 3.8%에 그쳤다. 85.8%는 “조치를 못했다”고 답했다. 10.4%는 “현재 논의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경남 지역 기계제조 중소기업인 A사 인사담당자는 “고용노동부의 통상임금 산정 지침에 맞춰 25년간 노사 합의로 정한 임금체계를 하루아침에 바꾸려니 당황스럽다”며 “중소기업은 정보가 부족해 대안을 찾기 어렵고 인건비가 얼마나 오를지 가늠하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절반 이상의 기업은 이번 판결의 영향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63.3%는 ‘매우 부정적’ 또는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부정적 영향을 예상한 곳은 중소기업(66.0%)이 대기업(60%)보다 많았다.
반면 ‘긍정적’ 또는 ‘매우 긍정적’이라는 답변은 10.3%에 그쳤다. 긍정적이라고 답한 대기업 A사 인사담당자는 “한 번에 수백억 원을 추가 부담해야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는데 소급 적용은 제한한다는 판결이 나와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은 “예상보다 부정적이라는 답변 비율이 낮은 것은 일시적 부담이 줄어들었다고 해석하는 기업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대법원 판결이 임금체계를 뜯어고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기업들은 기본급 비중이 낮고 수당 종류가 많아 임금구조가 복잡하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기업들은 복잡한 체계를 투명하고 단순하게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생산직 근로자가 적용받는 수당과 상여금은 14가지에 이른다.
이처럼 임금체계 개편은 일선 사업장 노사의 당면 과제이지만 노사의 이해관계가 크게 엇갈려 진통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경영자 측은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실적에 따른 성과급 비중을 높이려 할 것이고, 노조는 능력에 따른 차등 지급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성과연봉제 도입 등 임금체계를 단순화하는 방향으로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있지만 노조와의 이견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부는 임금제도개선위원회, 노사정위원회 등과 협의해 내년 초 각 기업의 노사 협상이 시작되기 전까지 임금체계 개편안을 내놓을 계획이지만 일각에서는 큰 혼란이 예고된 사안에 대해 고용부의 대응이 안이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상희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통상임금 논쟁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외국인이 많았을 정도로 이번 판결은 외국인 투자 유치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수년 전부터 예고된 사항임에도 대처가 미흡했던 정부나 관망해온 노사 모두 머리를 맞대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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