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영훈]개인 기부가 덥히는 사랑의 온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4일 03시 00분


세밑이면 전북 전주에선 ‘얼굴 없는 천사’가 나타난다. 40, 50대로 추정되는 그는 2000년부터 13년째 어김없이 몇 자 적은 쪽지와 함께 돼지 저금통과 현금을 기부했다. 성경 구절처럼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그가 기부한 금액은 지난해까지 모두 2억9775만720원. 전주시는 그의 선행을 기리기 위해 3년 전 노송동 주민센터 앞길 구간을 ‘얼굴 없는 천사로’로 바꾸고 표석을 세웠다.

▷최근 서울 중구청 환경미화원 9명은 재활용품을 분리수거해 모은 돈 500만 원을 ‘희망온돌’ 행사에 보탰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인 전남 여수의 초등학생 자매도 용돈을 아껴 모은 돼지 저금통을 기부했다. 대구에선 팔순의 6·25 참전용사 할아버지가 매월 3만 원씩 받는 수당과 폐지를 주워 팔아 모은 31만 원을 쾌척했다. 얼굴 없는 천사의 ‘기부 바이러스’가 널리 퍼져서인지 전북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지난해 전체 모금액 중 개인 기부금이 51억7000만 원(59.8%)으로 절반을 넘겼다.

▷연말연시 이웃돕기 모금 운동인 ‘희망나눔 캠페인’이 34일째를 맞았으나 ‘사랑의 온도탑’ 온도가 58.2도에 머무르고 있다. 공동모금회는 “총모금액은 1810억 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78억 원이 적다”고 밝혔다. 기업들도 현대자동차그룹과 LG그룹만 각각 50억 원, 20억 원 늘렸을 뿐 대부분이 기부액을 동결했다. 개인 기부는 지난해에 비해 11억 원이나 적은 268억 원에 그쳤다. 김석현 공동모금회 대외협력본부장은 “경기가 싸늘할수록 추위에 떠는 이웃들에게 온정을 베풀어 달라”고 호소했다.

▷기부가 여유로운 부자의 전유물은 아니다. 미국은 인구의 98%가 기부에 동참하고 있다. 소액 기부자가 많아져야 따뜻한 사회가 된다. 내일은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는 성탄절이다.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도 성탄절 날 회개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람으로 변했다. 양극화의 그늘이 짙어가는 우리 사회에서 풀뿌리 기부문화가 확산된다면 하루하루가 힘겨운 사람들이 좀 더 살맛을 느낄 것이다.

최영훈 논설위원 tao4@donga.com
#기부#희망나눔 캠페인#사랑의 온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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