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시게루(吉田茂),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도 참배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6일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역대 총리의 이름을 줄줄이 거론하며 자신의 참배를 정당화했다. 자신의 참배가 낳을 정치적 위험과 파장을 의식한 것이다.
○ 아베 총리, 파장 알고도 역주행
그는 일본 현직 총리로서 7년 4개월여 만에 참배를 강행했다. 사전에 참배를 예고한 듯 방송 헬기의 현장 생중계 속에 관용차를 타고 보란 듯이 신사를 찾았다. 신사 본전(本殿)에는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라는 이름으로 헌화했다. 일본 헌법이 금지하는 ‘정교(政敎) 분리’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다.
논란을 의식한 듯 일본 정부는 아베 총리가 헌화료를 사비로 봉납했다고 발표했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오후 정례 회견에서 “(참배는) 개인 입장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은 “야스쿠니 참배는 마음의 문제로 정치, 외교 문제화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이날 신사 참배로 절정에 이른 아베 총리의 ‘과거사 역주행’은 예고된 것이었다. 그는 지난해 총리 선거전 때부터 1차 내각 당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못한 것에 대해 “통한의 극치”라고 말해 왔다.
아베 총리가 군국주의 본산인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한 것은 그의 왜곡된 역사관과 무관치 않다. 그는 3월 중의원에서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전범들을 단죄한 극동국제군사재판에 대해 “연합국 측이 승자의 판단에 따라 단죄했다”고 말했다. 4월 참의원에서는 “침략의 정의는 정해지지 않았다.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참배를 마치고 나온 뒤 기자회견에서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이른바 전범을 숭배하는 행위라는 오해에 기초한 비판이 있다”며 “전장에서 산화한 영령의 명복을 빌고 국가 지도자가 손을 모으는 것은 세계 공통의 모습이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나는 두 번 다시 전쟁의 참화로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일이 없는 시대를 만들겠다는 결의를 전하기 위해 참배했다”며 억지 주장을 폈다. 그는 “원래 중국 또는 한국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겠다는 그런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고 했지만 그의 참배로 받게 될 피해국 국민의 마음의 상처는 도외시했다.
○ 아베 총리, 작정하고 명분 쌓아온 의혹
아베 총리가 취임 1년을 맞은 시점에 신사를 참배한 데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권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는 내년 2월 도쿄 도지사 선거, 내년 4월 소비세 인상을 앞두고 해를 넘기면 참배할 타이밍을 좀처럼 잡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악화된 한일, 일중 관계도 계산에 넣은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일본 언론에서는 총리 측근들의 말을 인용해 “참배를 한다면 중국과 한국과의 관계가 최악인 지금 참배해 공약을 실천한 뒤 다시 관계 개선에 나서는 게 낫다”는 보도가 이어져왔다. 아베 총리의 정치적 스승이라는 고이즈미 전 총리는 12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 안 한다고 일중 관계가 잘됐나”라며 참배를 부추겼다.
집단적 자위권 추진 등을 둘러싸고 미국이 아베 총리의 손을 들어 준 데다 17년을 끌어 온 오키나와(沖繩) 현 후텐마(普天間) 미군기지 이전 문제가 현 지사의 승인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게 된 점도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자신감을 갖게 된 배경이다.
한편으로 아베 총리가 그동안 연말 참배를 목표로 철저히 ‘연기’를 해왔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반기 들어 한국을 향해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고 하는 등 유화 제스처를 보이면서 한일 관계 악화에 따른 책임을 한국에 넘기면서 참배의 명분을 축적해 왔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직된 태도 때문에 노력해도 어쩔 수 없으니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게 됐다는 명분을 내세우려 했다고 볼 수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도 “역대 총리가 모두 일중, 일한 관계를 소중한 관계로 생각해 왔으며 이 관계를 확고히 하는 것이 일본의 국익이라는 신념을 갖고 야스쿠니신사에 왔다”며 한일, 한중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일 외교가의 한 관계자는 “한국과 중국을 철저히 무시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말할 수 없다. 사랑해서 때린다고 강변하는 셈이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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