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사외이사들이 그동안 코레일 방만 경영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 여러 차례 개혁 의견을 냈지만 노조의 반발을 우려한 경영진의 반대에 막혀 번번이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통성 없는 ‘낙하산’ 사장들이 노조의 눈치를 보고 노조와 뿌리 깊은 유대감을 가진 코레일 간부들이 노조의 집단행동에 암암리에 동조하는 분위기 속에서 사실상 유일한 견제세력이라 할 수 있는 사외이사들의 목소리마저 무력화된 것이다.
코레일의 비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함대영 제주항공 고문은 2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해부터 줄기차게 코레일의 정원 초과 인력 1100명을 명예퇴직 등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경영진은 ‘정년퇴직으로 초과 인원이 자연히 해소될 것이기 때문에 인위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지 않다’며 꿈쩍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코레일 직원은 지난해 기준 총 2만8967명으로 정원(2만7866명)을 1101명 초과한 상태다. 2004년 직무분석에서 정원 초과 상태로 진단받았으나 정년퇴직자가 있을 때 신규 충원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버티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근속연수가 오래돼 연봉이 높은 직원이 많아지면서 인건비가 과다하게 들어가는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함 고문은 신규 노선이 생길 때 신규채용보다 기존인력을 재배치해 인건비를 줄이자고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또한 회사가 본인 동의 없이 직원을 연고가 없는 지역 등에 배치할 수 없는 ‘강제전보 제한’ 노사 규약에 막혀 수포로 돌아갔다. 그는 “사장들이 전문성이 떨어져 노조에 약점을 잡히다 보니 간부들이 보고하는 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사외이사를 지낸 다른 인사(익명 요구)는 코레일 전체의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있는 요인을 개선하자는 안건을 올렸지만 노조의 반대로 여러 차례 무산됐다고 토로했다. 그는 “적자폭을 키우는 오지(奧地) 노선 운영을 감축하자고 당시 사외이사들이 조언했는데 노조가 인력감축 우려 때문에 크게 반발했고, 경영진도 공공성을 이유로 노조에 동조하는 행동을 보였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전문성이 필요 없는 단순 정비 등에 외주 인력을 투입하려는 계획도 노조의 거부감이 커 실패했다.
비상임이사인 한명철 전 서울시의원은 “일본의 철도회사 JR는 한참 전 민영화를 하면서 인원 감축도 많이 했고 부대사업을 통해 경영구조를 개선해 지금은 흑자로 돌아섰다”라고 소개했다. JR는 원래 단일 공기업이었는데 7개사로 쪼개지고 이 중 3개사가 민영화됐다. 한 전 의원은 “우리도 바뀌어야 하는데 코레일 내부에는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나는 변하기 싫다’는 속성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전직 철도청장 또는 코레일 사장들은 “노조가 불법파업을 끝내야 한다”는 데에는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파업 사태에 대한 정부의 자세 변화도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철도청장을 지낸 김인호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은 “정부도 코레일의 경영상태에 대한 책임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철도에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것이 코레일을 살리는 길이고 철도산업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길이라는 점을 보여줘야 노조가 불법파업을 벌일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경회 전 철도청장은 “노조가 기득권을 내려놓고 철도산업을 위해 뭘 해야 할지 공감대가 생긴다면 코레일도 얼마든지 적자폭을 줄일 수 있다”며 “정부도 코레일을 ‘예산 낭비만 하는 하마’처럼 몰아세우지 말고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코레일 사장을 지낸 이철 전 민주당 의원은 노조 측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 전 사장은 “코레일의 부채는 대부분이 정부사업을 충실히 이행하다가 생긴 빚”이라며 “이번 사태의 해법은 훌륭하고 능력 있는 경영진을 선임해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율적으로 경영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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