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시점에 참배를 하는지 모르겠다. 안 그래도 한국 중국과 사이가 안 좋은 가운데 이번 참배로 더욱 관계가 악화되지 않겠나”(나카다이라 지유키·中平チユキ·36·여)
26일 정오 도쿄(東京) 중심가 지요다(千代田) 구 구단시타(九段下)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참배를 한 데 대해 참배객들의 의견은 찬반으로 나뉘었다. 신사에 안치된 전몰자의 유족으로 참배를 온 시민들 중에도 아베 총리의 참배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민이 상당수라는 점은 이례적이다.
이날 오전 11시 반. 검은색 관용 승용차 5대가 줄지어 신사 안으로 들어왔다. 승용차가 멈추자 연미복 차림의 아베 총리가 내렸다. 이날 총리의 참배는 전격적으로 이뤄져 약 100명의 참배객보다 사전에 정보를 입수하고 몰려온 내외신 기자들이 300명으로 훨씬 더 많았다.
아베 총리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일본유족회’ 완장을 차고 일렬로 서 있는 인사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부터 했다. 일본유족회는 야스쿠니신사에 합사(合祀·둘 이상의 혼령을 한곳에 모으는 것)된 전사자의 유족이 만든 모임이다.
총리가 본전(本殿·신이 모셔져 있는 장소) 안으로 들어가자 더이상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기자들은 신사 내 정해진 구역에서만 취재할 수 있다. 공영방송 NHK는 헬기를 띄워 본전 안 아베 총리의 동정을 카메라로 찍었다. NHK방송은 11시 20분경부터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생방송을 했다. NHK방송은 지진 같은 대형 사건사고나 총리의 주요 기자회견 때마다 생중계를 한다. 2006년 8월 15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가 참배했을 때도 생중계했다.
오전 11시 55분경 아베 총리가 참배를 마치고 나오자 시민 1명이 “아베상, 요캇다. 아리가토(아베 씨, 잘했어. 고마워)”라고 외쳤다. 일장기를 손에 든 시민 2명이 박수를 쳤다. 하지만 환호는 퍼져가지 않았다. 8월 15일 종전기념일 때 참배객들이 각료나 의원들을 보면 환호성을 지르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집이 야스쿠니신사 근처여서 매일 참배를 하러 온다는 곤도 다카코(近藤孝子·70) 씨는 “총리가 한국 중국 눈치를 보지 않고 과감하게 참배한 것은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요코하마(橫濱)에서 온 40대 직장인 여성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총리가 가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중국이 반발하는 걸 알면서도 굳이 야스쿠니신사를 총리가 참배하는 게 국익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모든 석간신문은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26일자 1면 머리기사로 전했다. 아사히신문은 “경제에 주력해 온 정권 기조가 보수색 강한 정치로 바뀌는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요미우리신문은 “한국 중국과의 관계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고 미일 관계에도 영향이 미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경제계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자동차업계의 한 인사는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9월 이후 겨우 신차 판매량이 중국에서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아베 총리의 참배가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오후 자민당의 인터넷방송에 출연해 뒷수습에 나섰다. 그는 “(한국과 중국에 대해) 겸허하고 예의 바르게 성의를 다해 설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에 대해선 “최근 오해가 커지고 있다. 잠자코 있는 게 아니라 정확히 설명해 오해를 풀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편 그는 남수단의 한국군에 실탄 1만 발을 지급한 것과 관련해 한국이 “예비 차원에서 확보한 것으로 부족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에 대해 “고맙다는 말을 듣자고 한 게 아니라 일본은 도의의 나라여서 그 역할을 다했다”고 말해 미묘한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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