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계열의 한 물류회사는 외국인투자촉진법(외촉법)이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판단되자 지난해 말부터 외국자본과의 합작회사 설립 검토에 착수했다. 이 회사는 지주회사의 손자회사(자회사의 자회사)여서 그동안 100% 지분을 갖지 않으면 계열사를 만들 수 없었다. 하지만 외촉법 개정안 통과로 외국자본이 들어오는 경우 지분을 50% 이상만 가지면 회사를 세울 수 있게 됐다. 이 회사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의 투자를 받아 합작회사를 세우고 국내외 영업망을 공유하면 경쟁력을 높이고 향후 해외 진출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검토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동아일보가 2, 3일 한국중견기업연합회와 전국경제인연합회에 의뢰해 지주회사 53곳을 조사한 결과 지주회사 10곳 중 7곳은 외촉법 통과가 회사 투자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었다. 대기업 손자회사 2곳 중 1곳은 구체적인 합작투자 계획을 검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지주회사 설문 결과를 보면 대기업의 60.0%, 중견기업의 75.8%가 ‘외촉법이 향후 투자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답했다. 중견기업연합회 관계자는 “지주회사 규제 때문에 사업 기회를 찾지 못했던 중견기업들이 새 사업 검토에 나선 것”이라며 “일부 중견기업은 증손회사를 못 만들다 보니 연관성이 적은 자회사나 손자회사로 합작회사를 만들었다가 그동안 시너지를 내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지주회사의 88.7%는 ‘외촉법이 시행되면 한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응답했다. ‘외국인 투자 유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답변은 90.6%에 달했다.
특히 연 매출 3000억 원 이상인 대기업 손자회사 40곳을 조사한 결과 ‘외국자본과 국내 합작투자 검토 의향이 있다’는 곳은 20곳으로 절반에 달했다. 이 중 8곳(20%)은 ‘3년 내 합작투자 의향이 있다’고 말해 조만간 투자에 나설 뜻을 내비쳤다.
전경련 관계자는 “손자회사라면 일반인들은 감이 잘 오지 않겠지만 SK하이닉스, GS칼텍스 등 연 매출이 수십조 원에 달하는 회사도 많다”며 “투자 의사를 밝힌 8곳의 경우 연 매출이 평균 18조5600억 원에 달해 투자 규모도 수천억∼수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나머지 12곳은 “3년 내는 아니지만 중장기적으로 합작투자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합작투자 의향이 있는 기업에 투자 유치 예상국을 물어본 결과 ‘아직 특정 국가로 정해 놓지 않았다(9곳)’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검토 중인 국가를 밝힌 기업 중에서는 중국(5곳)이 가장 많았고 일본과 동남아시아가 3곳씩으로 뒤를 이었다.
합작투자를 검토하는 이유로는 경쟁력을 높이거나 해외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라는 답변이 많았다. 기술 제휴 등을 통해 선진기술을 들여오거나, 글로벌 기업과의 지분 교환을 통해 해외시장을 간접 공략하는 등의 사업 아이디어가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연 매출 수조 원대인 대기업 계열 건설업체 한 곳은 “미국이나 싱가포르와의 합작투자를 통해 선진기술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간 매출이 6000억 원인 한 에너지기업은 “원재료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러시아, 인도네시아 등에 합작투자를 제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투자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기업 중에는 ‘그동안 외촉법에 막혀 아예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는 곳이 많았다. 소수지만 △외국인 투자 제한 업종이어서 △모기업이 부실해서 등의 이유를 드는 곳도 있었다.
전경련 관계자는 “외촉법이 통과된 후 불과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많은 업체들이 사업 구상을 밝힌 것은 그동안 이 규제가 얼마나 기업들의 투자 의욕을 막아 왔는지를 잘 알려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합작투자 성공 사례가 나오면 현재 투자계획이 없다고 밝힌 곳 중에서도 투자를 시도하는 곳이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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