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은 나이가 어릴수록 듣는 것, 말하는 것 모두 치명적이다. 욕을 들었을 때 뇌가 손상되는 것도 문제지만 나이가 들수록 독한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게 되는 것이 더 문제이기 때문. 초중고교생의 언어 실태를 관찰한 각종 조사를 보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욕설의 어휘가 독해지고, 성적인 의미를 담은 은어가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 독해지는 욕설
아이들의 나쁜 말은 입에서 튀어나오는 데 그치지 않고 글과 온라인으로 번져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0년 수도권 초중고교생 2000명을 대상으로 나쁜 말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아이들은 평균 20어절에 한 번꼴로 비속어(욕설), 유행어, 은어를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조사들이 설문 위주로 이뤄진 것과 달리 이 조사는 아이들이 일상생활에서 나누는 대화는 물론이고 작문, 메신저, 미니홈피 같은 글까지 관찰한 것이 특징이다.
조사에 따르면 아이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거친 말을 쓰고, 성과 관련된 어휘를 많이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말을 할 때마다 존나, 개, 짱, 처 등 저속한 부사나 감탄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국어전문가들이 아이들이 많이 쓰는 비속어를 강도에 따라 5단계로 나눈 바에 따르면 초등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약한 강도 1의 비속어를 가장 많이 썼다. 반면 중고교생은 강도 4에 해당하는 비속어를 가장 많이 썼다. 강도 4, 5를 합친 비율은 중학생이 45%, 고교생이 63%나 됐다. 또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인 표현의 비속어가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저속해지는 은어
아이들은 또래집단의 결속력을 중시하는 특성이 있어 자신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은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은어의 표현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저속해지는 특성을 보였다.
초등학생들은 주로 ‘나대’ ‘×방’ 같은 단순한 은어를 통해 잘난 체하는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중학생들은 ‘엠이’(엄마), ‘담탱이’(담임)처럼 부모와 교사를 적대적으로 보는 은어나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해서)처럼 또래끼리의 비밀 공유를 중시하는 은어를 많이 쓰고 있었다. 고교생은 ‘빵셔틀’(빵 심부름하는 아이), ‘잉여킹’(쓸모없는 사람)같이 힘이 없는 사람을 얕잡아보고 조롱하는 은어를 많이 썼으며 성적인 의미를 담은 은어도 많이 사용했다. 특히 요즘 은어는 또래집단 내에서 무시 대상이 되는 아이를 욕보이는 어휘가 많았다. ‘잉여’, ‘똘추’(바보), ‘셔틀’(심부름하는 힘없는 사람), ‘찐찌’(덜떨어진 사람) 같은 단어들이 이에 해당한다.
장경희 한양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아이들의 말을 살펴보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하는 표현이 늘어나고 이런 말이 학교에서도 버젓이 쓰이고 있다”면서 “비속어를 전혀 쓰지 않으면서도 상대에게 심한 언어폭력을 가하는 비유적인 표현이 쓰이고 있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학년 올라갈수록 훈육도 안돼
교육학 및 심리학 전문가들에 따르면 초등학생들은 자기가 쓰는 말이 나쁜 말이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 채 사용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잘못을 지적하면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반면 중고교생은 나쁜 말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면서도 쓰기 때문에 어른들의 개입이 쓸모없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중고교생의 경우 또래들 사이에서는 나쁜 말이 일상인 것과 달리 부모나 교사가 있는 곳에서는 나쁜 말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어른들은 자신의 자녀나 학생들이 실제로 어떻게 욕을 하는지 알아채기 어렵다. 서울 D중학교 3학년 김모 군은 “가족끼리 밥을 먹다가 동생이 물심부름을 안 해서 욕이 입 밖으로 나올 뻔했다가 겨우 참았다”면서 “부모님과 얘기하던 중 갑자기 ‘졸라’가 튀어나와 혼이 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정윤경 가톨릭대 심리학과 교수는 “아이들은 욕이나 은어를 공유하면서 집단 정체성을 느끼고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활용한다”면서 “그래도 아주 어릴 때부터 욕을 달고 산다든가, 너무 심한 욕설을 쓴다든가, 부모 앞에서도 욕을 한다면 어른들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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