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어떤 통일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7일 21시 20분


‘자유민주체제 통일’만이 대박… 그러나 친북적 통일觀도 만만찮아
자유민주 통일 국론조성부터 험난… 학교 바른 통일교육도 못하는 현실
독일은 자유민주 도전세력 차단… 서독 기본법을 살려 통일 후 안정

배인준 주필
배인준 주필
박근혜 대통령이 그제 밝힌 신년 키워드는 첫째 경제, 둘째 통일이었다. 통일에 관해서는 “올해 국정 운영에 있어 또 하나의 핵심과제는 한반도 통일시대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했다. 통일시대를 열기 위한 대내 기반 중에 가장 기초적인 기반은 통일에 대한 국민 다수의 동의(同意)일 것이다. ‘통일만 되면 좋겠다’가 아니라 ‘어떤 국가로 통일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중요하다. 어떤 통일이냐가 최소한 수백 년간 한국사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헌법 4조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즉 ‘대한민국 체제로의 한반도 통일’을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고 믿는다. 그제 박 대통령도 당연히 이런 통일을 말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라고 했지만 대한민국 체제를 변질시키는 통일이라면 그것은 결코 대박일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와 수령절대주의를 버무린 체제는 있을 수 없다.

문제는 자유민주 통일에 대한 국론 형성부터가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역대 정권, 그리고 국내 좌우 세력이 똑같은 통일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수령 김정일은 6·15공동선언 2항에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명시했다. 이에 대해 국내 좌파 이론가인 백낙청 씨는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2006년)이라는 책에서 “통일국가 형태에 대한 논란을 제거한 절묘한 타결”이라고 칭찬했다. 그는 “남북 현 정권의 일정한 안정성을 보장하는 형태 말고는 다른 합의의 가능성이 없다”고 덧붙였다. 남한 정권은 국민이 선거를 통해 창출하고 보장하는 것이니까, 결국은 북한 김일성 세습왕조정권의 안정을 보장해야 한다는 얘기인 셈이다. 6·15선언은 자유민주 체제로의 통일에 반대한다고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북한의 고려연방제에 뿌리가 닿아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에 걸쳐 적화통일 목표를 바꾸거나 포기한 적이 한번도 없다. 반(反)파쇼 반제(反帝)통일이라고 둘러대지만 한반도 전체를 북한화(化)하겠다는 속셈일 뿐이다. 북한 주민 2400만 명을 공포체제의 인질로 삼은 것도 모자라 남한까지 수령절대주의 지옥으로 만들려는 것은 허황된 망상이다. 그러나 한반도 전체에 자유민주의 축복이 내리도록 하는 통일도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해낼 수 있는 가벼운 숙제가 아니다.

다수 국민, 특히 자라나는 세대에게 자유민주 통일에 대한 공감과 열망을 불어넣는 일부터가 만만찮다. 지난 정부의 어느 고위당국자는 “중고교에서 올바른 통일교육을 하기가 어렵다. 교장이 하고 싶어도 전교조 세력의 반대 때문에 제대로 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전교조 통일위원회는 자유민주 통일 지지(支持)가 아니라 저지(沮止)를 위해 존재하는 듯하다. 또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에 입각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한 미국(2013년 한미정상 선언)에 대한 불신과 반감을 제자들에게 주입시킨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에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로부터 올바른 통일관을 가르칠 수단도 없다. 긍정사관(史觀)으로 대한민국 역사를 기술한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2300여 개 고등학교의 채택률이 0%라는 기막힌 사실도 통일 논의의 앞날이 험난할 것임을 일깨운다. 박 대통령과 정부는 이런 현실을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부터 하고 답을 찾아내야 한다.

백낙청 씨 같은 이른바 원로그룹부터 전국의 학교 일각, 민노총 같은 정치노동 조직, 일부 극좌 종교 조직, 그리고 대학생 조직까지 대한민국의 건전한 통일담론을 방해하는 세력은 운동성이 뛰어나다. 전직 고위당국자는 “잘 훈련되고 조직화된 이들의 뿌리는 아주 깊다”면서 “자금(資金)도 있는 데다 정치권까지 연결되어 있어 자유민주 통일에 대한 국론 조성부터 도전 받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들은 진보와 민주의 탈을 쓰고, 북한이 불리한 상황에서의 통일논의에 재를 뿌리기 위해 남남(南南) 갈등을 부추길 것이고, 일부 세력은 북한과 호흡을 맞춰가며 남한 내 국론 분열을 꾀할 것이다.

독일은 옛 서독인들로부터 사랑받던 기본법(헌법)을 그대로 둔 채 통일을 완성했다. 서독의 동독 흡수통일과 통일 독일의 안정은 대내적으로 기본법에 입각해 자유민주 체제에 대한 도전을 강력하게 차단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통일헌법은 기존의 서독 기본법을 거의 고스란히 살리고 극히 일부만 수정한 것이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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