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13일 국회 신년 기자회견에서 “제2의 창당을 한다는 각오로” 정치혁신과 야권의 재구성에 힘쓰겠다고 선언했을 때 문재인 의원은 뉴질랜드 오지에서 트레킹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당내 비노(비노무현), 친노(친노무현) 진영의 좌장 격인 김 대표와 문 의원. 두 사람의 관계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김 대표는 지난해 대표로 선출되자 취임 일성으로 ‘뼈를 깎는 혁신’을 내놨다. 그러나 곧장 불어닥친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의 국가기록원 미(未)이관 사태 등으로 당 혁신 작업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반면 대선 패장(敗將)을 자처한 문 의원은 회의록 원본 공개 등을 요구하며 대여(對與) 전선의 선봉에 섰다. 이 여파로 김 대표는 두 달간의 장외투쟁을 주도하게 됐다. 당내에선 “상은 문 의원이 차려놓고, 설거지는 김 대표가 한다”는 반응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대선 패배 1년을 맞아 김 대표는 대대적인 당 혁신 작업을 예고했지만, 문 의원은 대선 회고록을 펴내면서 공개적인 정치 활동을 선언했고, 2017년 대선 도전 의사를 밝혔다. 김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선당후사(先黨後私)해야 한다”고 못마땅해했다. 이번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을 비판하면서도 “그렇다고 우리의 반성을 가로막는 것이 돼선 안 된다”고 에둘러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당 관계자는 “대선 패배에 책임의식을 갖고 반성해야 할 문 의원이 차기 대권 도전을 거듭 시사하는 것은 당을 흔드는 행위 아니냐는 인식이 깔려 있는 듯하다”고 했다.
새해 들어 두 사람의 관계는 더 껄끄러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4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6·4 지방선거는 두 사람의 충돌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문 의원은 당분간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일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와 엇박자를 냈다가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온다면 선거 패배 책임론에 휩싸일 수 있고, 차기 대선 구상까지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두 사람의 ‘불안한 동거’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 의원 측 관계자도 “문 의원은 당원으로서 최소한의 역할에 충실할 것으로 본다”며 “지방선거는 당 지도부가 핵심”이라고 했다. 지방선거 승리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할 처지인 김 대표도 불협화음을 불사하며 친노 진영과 맞설 이유가 많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문 의원이 지방선거 국면을 지지 기반 다잡기를 꾀하는 장(場)으로 활용하려 할 경우 김 대표는 칼을 빼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미 김 대표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분파주의 청산’을 내걸고 친노 진영에 경고장을 날린 터다. 김 대표가 조만간 문 의원 등 각 계파의 수장을 불러 ‘선당후사의 정신’을 당부하기로 한 것도 이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다만 문 의원이 전면에 나설 가능성은 열려 있다. 김 대표가 사실상 친노를 겨냥한 ‘인적 쇄신’과 ‘민주당 혁신’을 내건 상황에서 친노 진영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등장할 수 있다. 한 재선 의원은 “태생적으로 두 사람은 평화로운 공존이 어렵다. 한 사람이 상처를 입어야 다른 한 사람이 올라설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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