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삶을 꿈꾸며 생명을 만들어냈지만 탄생한 건 흉측한 괴물. 사람들은 한 명씩 차례로 숨진다.’(프랑켄슈타인)
‘이발사에게 모든 것을 맡긴 채 편안하게 눈 감고 있는 남성. 남성의 얼굴 위에서 춤추던 면도날이 돌연 그를 향한다.’(스위니 토드)
올해는 스릴러 뮤지컬 풍년이다. 3월 창작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을 시작으로 ‘스위니 토드’ ‘도리안 그레이’ ‘드라큘라’가 잇달아 무대에 오른다. 전통의 강자 ‘지킬 앤 하이드’도 11월 공연된다.
스릴러가 대세인 이유는 뭘까? 스릴러 뮤지컬의 힘은 강렬한 이야기에서 나온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숨 막히게 벌어지며 관객을 빨아들인다. 뮤지컬은 영화나 연극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기 어려워 이야기 자체가 지닌 힘이 필요하다. ‘도리안 그레이’의 연출을 맡은 조용신 프로듀서는 “관객을 사로잡는 힘은 음악과 스토리인데, 스릴러는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을 같이 추리해 볼 수 있어 관객이 집중하게 된다”고 말했다.
서구인에 비해 한국 사람들이 스릴러 뮤지컬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한국 관객들이 희극보다 비극에 더 몰입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코미디 장르가 폭넓게 사랑받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이 장르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진다. ‘스위니 토드’ 제작사인 뮤지컬헤븐의 박용호 대표는 “한국인들은 죽음의 미학, 감정의 과잉 표출에 심취하는 경향이 있다”며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증오심을 스릴러를 통해 대리 분출하려는 욕구가 있다”고 말했다.
‘셜록 홈즈’ ‘프랑켄슈타인’처럼 기본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창작되는 작품이 이어지는 것도 스릴러 뮤지컬의 인기를 보여준다. 박병성 더 뮤지컬 편집장은 “작가나 관객들이 영화, 미국 드라마를 통해 스릴러에 익숙해진 것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제작 여건의 한계 때문에 스릴러를 선호한다는 해석도 있다. 뮤지컬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고스트’처럼 화려한 볼거리가 있거나 음악적 완성도가 높은 뮤지컬이 각광받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며 “한국에서는 제작비를 많이 들여 볼거리를 만들어내기 어렵고 음악적 완성도도 높지 않다 보니 이야기에 주력하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스릴러의 주인공이 남성이라는 점도 주요 관객층이 여성인 한국에서는 스릴러 뮤지컬이 강세를 이루는 원인이 된다. 남자 배우들이 대거 무대에 서는 스릴러는 여성 관객들이 지갑을 열게 만든다는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의 연출을 맡은 왕용범 씨는 “강한 카리스마를 지닌 스릴러 주인공은 남성적인 매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캐릭터”라며 “극단적인 설정을 통해 남성 배우들이 내면의 감정을 폭발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여성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배우 조승우는 ‘지킬 앤 하이드’를 통해 뮤지컬계의 ‘절대강자’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쓰릴 미’는 김무열 최재웅 등 스타들을 배출하며 남성 배우의 등용문이 됐다. 이유리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는 “여성 관객들은 남성 배우의 원초성과 ‘나쁜 남자’의 본성을 발견할 수 있어 스릴러에 열광한다”며 “제작자들도 스릴러는 관객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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