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100세 시대에 50대 중반 나이는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말하는 왕년의 농구스타 박찬숙 한국여성스포츠회 실무 부회장. 3월에 대학에 입학하는 그는 올해 고3이 되는 아들보다 1년 먼저 대학생이 된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고사리 손으로 큼지막한 농구공을 튀기는 어린이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따뜻하기만 했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이 정말 예쁘지 않나요. 200명 가까운 회원 이름을 다 외워요. 내 친구 가운데 손자 본 애들도 있는데….” 19일 서울 양천구 경인초등학교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농구 클럽 소속 초등학생을 지도하던 박찬숙 한국여성스포츠회 실무 부회장(55)이었다. 1980년대 한국 최고의 농구 스타였던 박 부회장은 최근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사회체육학과에 합격해 3월이면 1978년 숭의여고 졸업 후 36년 만에 늦깎이 대학생이 된다.
“합격 통지 문자를 받고는 날아갈 것 같았어요. 요즘은 초등학교 입학을 앞뒀을 때처럼 가슴이 설레요.” 28세인 딸과 올해 고3이 되는 아들(18)을 둔 그가 50대 중반에 만학의 길을 걷게 된 이유는 뭘까. “학창 시절 운동에만 매달리느라 대학은 꿈도 못 꿨어요. 늘 아쉬움이 컸죠. 몇 차례 기회가 있었는데 결혼, 육아, 가사 등의 이유로 놓쳤고요. 스포츠 행정가로 일하면서 배움에 대한 갈증이 더욱 커졌어요.”
박 부회장은 육상 국가대표 출신이자 한국여성스포츠회 이사인 김경숙 한국체대 대학원장의 적극적인 주선으로 대학 문을 두드리게 됐다. 이동관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총장도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2012년 런던 올림픽 훈련캠프단장을 맡았을 때 당시 청와대에 있던 이 총장님이 힘을 많이 실어주셨어요. 이번에 대학 지원할 때 공석이던 총장에 부임하면서 다시 인연을 맺게 됐죠.” 박 부회장은 27일 이 학교 홍보대사 위촉식을 한다. 세월을 거스르는 그의 열정과 도전정신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주로 인터넷으로 수업을 받게 되는데 이왕 시작한 거 열심히 제대로 할 겁니다. 모르는 게 있으면 자식들에게도 물어보는데 배움에는 부끄러움이 없다고 하잖아요. 동기들과 MT도 가고 맥주도 사줘야죠.”
1979년 세계선수권 준우승과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은메달의 주역인 박 부회장은 “100세 시대라고 하지 않느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딸과 아들도 엄마의 결정을 아주 좋아한다”며 웃었다. 그럼 그의 인생은 농구경기로 치면 어디쯤 와 있을까. ‘후반전 정도’로 여겼던 기자의 추측은 여지없이 틀렸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점프볼을 하려고 코트에 선 느낌이에요. 이제부터 새로 뛰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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