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일본의 역사 왜곡에 맞서 국제사회가 공동 대응하자고 제안했다. 미국은 이에 화답하듯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게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기존의 사과를 다시 확인할 것을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참석차 스위스를 방문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23일(현지 시간) 언론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가 각국의 반대를 무시한 채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고수하고 A급 전범에 경의를 표하는 것은 (일본의 2차 대전 발발이) ‘침략’이라는 기존 판결을 뒤집고 전범을 재조명하겠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왕 부장은 “중국 표현 중에 ‘진상을 감추려 하면 오히려 드러나고 닦을수록 검어진다(欲蓋彌彰 越抹越黑·욕개미창 월말월흑)’는 말이 있다”며 “아베의 변명은 잘못된 역사의식을 견지하고 있음을 증명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모든 양심 세력과 정의를 지지하는 국가들은 이를 절대 받아들이면 안 된다. 우리는 국제사회가 손을 맞잡고 역사를 뒤로 돌리려는 (일본의) 행위를 저지할 것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일본의 역사 왜곡에 일대일 대응을 해 온 중국이 앞으로는 한국 등 이해가 일치하는 국가들과 공동전선을 구축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일본발 역사 갈등에 개입하기를 꺼렸던 미국 역시 동북아 긴장 해소와 한미일 동맹 강화를 위해 점차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합리화와 중-일 전쟁 발발 가능성을 시사한 아베 총리의 발언을 계기로 한국과 미국, 중국이 일제히 대일 압박에 나서면서 공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3일 복수의 미국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미국은 아베 총리로부터 더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겠다는 확답을 받길 기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일본이 2차 대전 책임에 대해 다시 사과할 것을 아베 총리에게 요청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미국은 아울러 일본에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등 한국과의 갈등을 끝낼 것을 종용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실제로 일본을 방문 중인 윌리엄 번스 미 국무부 부장관은 24일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일본 방위상 등과 만나 한국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촉구했다. 또 제임스 줌월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도 23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미국은 일본이 이웃 국가와의 관계 개선을 위한 조치를 취하기를 진실로 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이런 움직임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4월 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한미일 결속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일 갈등이 격화될수록 안정적인 동북아 관리가 어려워질 뿐 아니라 자칫 중-일 간 우발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본의 ‘역사 도발’을 자제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연일 ‘중국 때리기’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정기국회 개원일인 2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중국이 일방적으로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했고 센카쿠 열도 주변 영해를 반복해서 침입하고 있다”며 중국을 비난했다. 그러면서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계속 의연하고 냉정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당 의원들은 “옳소”라고 외쳤다.
아베 총리는 자위대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이번 정기국회에서 평화헌법 해석을 바꾸겠다는 뜻도 시정연설을 통해 분명히 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위장 슬로건으로 평가받는 ‘적극적 평화주의’ 개념에 대해선 “일본 최초의 국가안보전략을 관통하는 기본 사상”이라고 치켜세웠다. 아베 총리는 일본이 미국과 함께 국제사회에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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